내가 했던 이야기

나의 여행명소

소나무 01 2010. 1. 5. 14:48

  

                                                 

 

 

나의 여행명소 -금강산이 향로봉 오기 전 멈춰선 건봉산

 

 

 1월 하순부터 2월 초순 사이, 가는 겨울이 아쉬운 사람은 이쯤해서 태백준령을 넘어 볼 만하다. 하늘과 바다를 빼고는 온통 은백색, 그중 으뜸은 건봉사를 찾는 일.

진부령을 넘는 길을 택한다면 고갯마루에 외롭게 선 순국기념비와 간성에 이르는 군데군데 황태덕장에서 생기를 느낄 수 있다. 송지호와 화진포로 날아드는 겨울 철새들의 날갯짓도 장관이다.

 

 6·25전 남과 북이 함께 만들었다는 합작교를 건너면 교동리, 마을 우측으로 좁게 난 길을 지나면 고즈넉한 산촌과 때 묻지 않은 계곡이 이어지고 그 끝에 건봉사(乾鳳寺)가 있다.

 우리나라 4대 거찰 중 하나였을 정도로 위세 당당한 대가람이었지만 전쟁 통에 쑥대밭이 되었다. 용하게도 포화를 견뎌낸 노송들. 넓은 눈밭에 말없이 서있는 48분의 부도군(浮屠群). 세속의 때를 말끔히 씻어주는 불이문을 지나 무지개 형태의 능파교(凌波橋)를 건너면 부처의 세계가 전개된다. 바라밀 석주와 꼭대기에 봉황을 얹힌 솟대형 석간 등(燈)과 허물어진 석축 하나하나까지 낯선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금강산이 향로봉으로 흘러오기 전 멈춰 섰다는 건봉산. 그 아래에는 지금도 눈이 쌓여 있다. 바람처럼 떠도는 운수납자(雲水衲子)의 이름을 알려 하지 말라며 따뜻한 차 한 잔 내주고 손을 끌어 눈 덮인 산자락을 한 바퀴 돌아주는 스님이 있어 더욱 그리워진다.

 

                                                                                                (1999. 1.20.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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