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고향에서의 하룻밤은 행복했다. 유난히 투명한 별빛도 좋았지만 검은 적막을 깨는 소쩍새와 논개구리 소리의 묘한 조화는 그동안 잊어버렸던 밤을 정취를 되찾아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새벽닭 소리에 눈을 뜬 아침은 아침대로 엷은 안개 속 온통 초록의 싱그러움이 절로 심호흡을 만들었고 개옻나무 사이를 자유로이 옮겨 앉는 어치 두 마리가 그저 앞만 보고 사는 내 삶의 건조함을 가여워하는 듯 했다.
고향의 본래 모습들이 개발로 인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런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음은 작은 축복이었다. 마악 뽑은 마늘과 부추를 건네는 옆집 할머니의 정은 또 얼마나 너그러운 것인지.
하지만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데도 옛날 그 대로의 고향이기를 바라는 것은 손에 흙 안 묻히고 살아가고 있는 나의 못된 이기심이기도 하다. 좀 더 눈을 돌려보면 마당에 잡초가 무성한 빈 집들과 비닐멀칭으로 온통 하얗게 땅을 덮어버린 들녘 모습이 오늘의 고통스런 농촌을 말해 주는 것 같아 숨이 턱턱 막힌다.
그동안의 농정 한계와 수입개방 등에 여파에 따라 농업비중이 비교적 큰 고향농촌은 피폐화가 더욱 심각하고 취약한 산업기반 속에 젊은 노동력은 계속 도시로 빠져나가 이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모두들 이제 농촌은 없다고 얘기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싶다. 당장 먹고 살아야한다는 절박함이나 FTA에 대한 절절한 고민 같은 것이 없는 한낮 배부른 자의 신소리에 불과하다는 비아냥거림도 있겠으나 아직은 농심이 건재함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만든 "6시내고향"이란 TV프로그램은 오늘의 변모된 농촌상을 취재하여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보자는 것도 지향했지만 그것보다 우선한 것은 우리 농촌만의 고유한 풍습과 함께 자연 그 안에서 이웃을 나처럼 배려하며 오순도순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공유해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지금껏 20년 가까이 방송되고 있으니 시청자들도 그 뜻에 동의하지 않나 싶다.
개발과 변화의 가속화는 앞으로도 계속 농촌을 잠식해 가겠지만 사람의 본성까지 바꿀 수는 없다. 농심은 하늘이 내려 준 천심이라 했지 않은가. 우리의 미풍양속을 소중히 여기고 물욕보다 정신의 가치를 우위에 두며 그리고 그동안 농촌에 투자된 많은 것들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줏대 있는 사람들이 농촌 곳곳을 지키고 있으면 결코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그런 사람마저 사라져버린 삭막한 농촌 모습이다.
나 스스로는 가능한대로의 빠른 귀향을 원하나 하지만 그것이 지금 180만 명대까지로 줄어버린 고향의 인구 늘이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이미 노후 인력으로 분류되어버릴 형편에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솔직히 자신이 없기도 하다. 그런다할지라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차리는 밥상에 숟가락 몇 개 더 놓을 수 있겠다는 마음만으로도 나의 역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아직은 명확한 실체가 없지만 내가 머물러야 할 자리가 결국 고향 그곳이기에 내가 추구하는 그 모습이 점점 구체화될 것으로 여기며 다만 아직도 타향에 머무르고 있음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2007. 6. 7. 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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