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했던 이야기

아름다움을 보는 눈

소나무 01 2010. 1. 6. 14:29

   

                                                                                 

 

 

 직업이 그렇다보니 메모해 두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는 편이다. 지난 해의 내 수첩에는 가슴이 먹먹한 1단짜리 작은 신문기사 하나가 스크랩되어 있다.

 남녘의 어느 마을, 야산에 풀을 베러 갔던 열 세 살의 중학1년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짧은 기사다. 사연인 즉 근처 수박밭에 떨어져 있는 단풍잎을 주으러 들어갔는데 그만 주인에게 서리범으로 몰려 심한 꾸지람을 듣게 되었고 소녀는 그게 억울하여 끝내는 농약을 마시고 세상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 여학생에게 결코 절도혐의가 없었음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은 단지 수박밭에 떨어져있는 단풍잎을 주으려 했을 뿐이라는 유서를 남겼기 때문이다. 곱게 물든 단풍잎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기에 소녀는 그것을 주워 책갈피라도 해야겠다는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소녀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어른의 잘못된 판단과 행동이 어처구니없게도 한 꿈 많은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 간 것이다.

 

 그 소녀는 왜 풀을 베러 나서게 되었을까. 짐작컨대 풍족치 못한 가정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이것저것 집안일을 도와야 했을 것이고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빠엄마 대신 소꼴을 마련하느라 어린 나이에 힘든 노동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 환경이 소녀를 죽음으로 내 몬 그 어른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기에 앞서 그저 자신만의 생각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 편협하고 이기적인 행태가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세상을 진실하고 아름답게 보려하는 눈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소녀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그 어른은 수박에 대한 피해보다 단풍잎을 주으려 했다는 소녀의 그 아름답고 진실한 마음씨를 먼저 읽었어야 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이 세상에 드러나 보이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아름다운 형태의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어떤 실태를 찾는 것 보다는 그 무엇을 아름답게 쳐다보려 하는 그런 마음의 눈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지. 그런 아름다움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은 분명 순수하며 착한 마음씨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런 마음의 눈은 해맑게 성장하는 우리 청소년들의 전유물이기도 하다. 그런 눈을 잘 보아주고 키워줘야 한다.

 내가 만들고 있는 ‘한국의 미’라는 프로그램도 바로 그런 마음으로 봐주길 원한다.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이라면 그것을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고만 찬사를 보내지 말고 그것을 만든 사람의 마음씨를 들여다 봐 주길 바라는 것이다.

 

 다시 그 소녀 얘기,

 소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그 못된 어른은 크게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도 쉽게 목숨을 팽개쳐 버린 그 소녀도 결코 잘한 행동은 아니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그 소중한 아름다운 마음씨를 함께 포기해 버렸으므로.

 우리 청소년에게 가장 큰 희망과 용기와 재산인 것은 다른 어떤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그런 눈이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말해 주고 싶다.

 

                                                                  (1993.10. 주변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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