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했던 이야기

김씨부부의 생명운동

소나무 01 2010. 1. 13. 15:55

 

 

 

 

김씨부부의 생명운동

 

 최초로 설정한 주인공은 명혜성이란 예쁜 이름의 주부였다. 이름처럼 아름답게 살아가겠거니 하고 내심 생각했고 삭막해진 현실에 지금의 어려운 농촌을 지켜가는 소금과 같은 존재일 것이라 생각했다.

 광록회로부터 입수한 그녀의 자필 원고는 전체적으로 신선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고 “물을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뱀이 마시면 독이 될 수 도 있다”는 표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명혜성이란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주저할 바가 없었다. 그녀가 농촌에 정착해서 유기농법을 실천에 옮기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차근차근 카메라에 담아 가기로 했다. 더구나 대학을 졸업한 여성이 농사지으며 살아간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통속적인 것에 물들어 있는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까.

 

 지난 해 11월 나는 사전 취재 겸해서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고 비아면에 있는 그녀의 집을 찾았다. 원고에서 봤던 “우봉농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으려니 생각하고 가볍게 나섰으나 그 좁은 동네서도 대학 나온 젊은 부부, 포도밭, 무공해 농사 등 몇가지 단어들을 서너 번 나열하고 나서야 어렵사리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나중에 알았지만 용정이, 재동이 등으로 이름 붙여진 충실한 개들의 빈집 지킴으로 인해 얼씬도 하지 못하고 그저 먼발치에서만 집 안팎 분위기를 살피고 돌아왔을 뿐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두 번째 방문은 아예 카메라를 장착하고 역시 연락 없이 현장으로 뛰어 들었다. 그 땐 남편 김현인씨 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김현인씨와는 일면식이 있었다. 취재를 극구 사양하는 그를 설득하기 위해 함께 일하는 PD와 광록회 이사와의 사전 모의(?)된 술좌석이었다. 나중에 만나게 된 부인도 그러했지만 그의 첫인상은 세상에 이렇게 때 묻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할 정도로 내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드는, 말하자면 세상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어떻든 김현인씨는 다행히 내가 의도하는 프로그램에 특별히 계산된 것이 없음을 이해하여 주었고 결국 적극 협조하여 주었다. 두 번째의 취재부터 보다 많고 필요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명혜성이란 이름은 불명(佛名)이었으며 실명은 김금해씨라는 것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불교 쪽에 심취해 있다는 것과 학교, 졸업, 결혼, 농사, 자녀 등의 보다 많은 정보와 생활관, 가치관 등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다음부터의 주인공은 김씨 부부로 수정을 하게 됐고 프로그램 제목도 “김씨부부의 생명운동”으로 내심 정해 버렸다.

 

 난 이 프로그램의 PD는 내가 아니고 카메라맨 당신이라고 그에게 당부했다. 왜냐하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모습들을 그 때 그 때 카메라에 꾸밈없이 담아내야 했으므로.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 다짐했다.

첫째, 절대 과장하지 않겠다. 이것은 프로그램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주인공을 미화시킨다든지 해서 소영웅주의자와 같은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들도 다른 농민과 같은 “농사꾼”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주관을 버리겠다는 것이다. 나의 어떤 윤리의식이나 얄팍한 지식과 비교 한다든지 다른 사람들의 것과 잣대로 재지 않겠다는 것이다. 되지 못하게 훈계조 프로그램이 될 수 도 있으니까. 그리고는 그들과 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대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들로 프로그램은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삭막한 겨울철에 취재를 하고 보니 “그림”이 될 만한 것이 없어 오직 두 사람의 가슴 속 생각을 어떻게 표현해 내느냐가 늘 고민이었고 그 때문에 사실 벽에 부딪히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서로의 마음이 일치했던 것은 우리의 역할로 인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생명에 대한 자각을 일으키게 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인간적 공존을 이루게 하며, 열악한 조건 속에 허탈상태에 빠져 있는 오늘의 농민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더욱 욕심을 부려 인간적 가치와 인격의 존엄성보다는 물질적 효율성과 이기적 계산성이 중시되고 있는 현실에 뭔가 공감대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김씨부부의 생명운동”은 그럭저럭 두 달 동안의 시간을 보내고 제목 수정 없이 방송되기에 이르렀다. 내 깐에는 작은 것에도 신경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나의 무능력, 부족한 판단력 등으로 인해 마음에 썩 드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 두 주인공의 진솔한 삶과 주위 분들의 따뜻한 도움과는 별도로.

 

 우리네 농촌에는 내일을 생각하며 묵묵히 일하는 진정한 “농사꾼”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앞부분에서 얘기를 꺼냈었지만 이들 부부가 결코 대표성을 띄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농촌에는 짙은 그림자가 깔려 있다고 모두들 말하고 있다. 농민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계속 몰락의 과정에서 헤어날 수 없다. 건강한 노동력은 자꾸 빠져 나가고 농산물이 오를만하면 수입농산물이 들어오고… . 농민들은 자포자기 상태가 되어 정부의 책임 있는 농정을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뾰쪽한 대책이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나는 농촌을 좋아하되 농촌사람 모두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으면서 땀 흘려 일하되 지혜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좋아할 뿐이다. 앞으로의 농촌에는 필시 그런 사람들 밖에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도 그런 농민들만을 이해하려 들 것이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거부하고 땀으로 농사짓는 사람, 인간과 자연을 생각하며 진실 되게 살아가는 사람, 이를테면 그런 사람들을 나는 지혜로운 농민이라고 말하고 싶다.

 

취재 도중 바로 그런 사람들이 함께하는 광록회에 들렀더니 좋은 시가 한 쪽 벽에 걸려 있었다.

 

……

가난에 시달리고 권력에 억눌리어도

겨레의 손이 되고 발이 되어 허리띠를 졸라맨 채

끝내 맡은 바 임무를 저버린 적 없이

믿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마음 바르고 부지런하여 가난한 법 없으리라는

조상의 가르침 그것 하나 뿐

그 마음 뼈에 새겨서 살아 온 사람들이여

……

 

 시인 조지훈의 농민송(農民頌)은 내 마음 구석구석을 울리는 것이었다. 난 그 긴 시를 가슴으로 읽어 내며 내 프로그램의 마지막 장면을 꾸며보고 있었다.

 

……

몹쓸 세상에 하늘이 보낸 착한 사람들이여,

농민들이여.

 

 신춘특집 “김씨부부의 생명운동”은 바로 그 시로 끝이 났지만 내 마음에는 또 다른 “농사꾼”을 찾아 나서겠다는 새로운 시작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1990. 3. 광록)

'내가 했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애독서  (0) 2012.06.07
TV리포터는 누구인가  (0) 2010.02.09
"한국의 미" 제작을 마치고  (0) 2010.01.12
병원선 511호를 따라  (0) 2010.01.11
아름다움을 보는 눈  (0) 2010.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