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좁은 황토방 안에서 잠시 콘센트를 점검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꽝!- "하는 소리가 나는 바람에 화들짝 놀랐다. 어디 지붕 한 군데가 무너졌나 싶었나.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 얼마나 튼튼하게 지은 집인데-. 포탄이 떨어져도 꿈쩍않을 집이다.
소리가 생각보다 컸지만 인근 부대 훈련장에서 포 사격이 있었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곤 잊어 버렸다.
그런데 얼마 후 현관문을 나서 거실 앞 데크 쪽을 보니 바닥에 장끼 한마리가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왠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거실의 대형 유리창을 바라보니 꿩이 부딪힌 듯한 타액과 같은 분비물들이 비산해 있다.
"틀림없는 뇌진탕이군- "
꿩은 대형 유리창을 톻해 집 뒤편으로 관통하려다가 유리창에 부딪혀 그만 횡사해 버린 것이었다. 유리창을 주먹으로 쳐 봤더니 조금 전에 들었던 꽝-하던 소리와 비슷한 둔탁한 공명음이 난다. 그 거대한(?) 몸의 꿩이 무서운 속도로 날라 와 유리창을 사정없이 들이 받아 버린 것이다. 강화유리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유리창은 산산조각 났을 것이 뻔하다.
꿩의 몸체를 만져 보니 아직 체온이 남아 있다. 이걸 어찌하나. 지난 번의 노랑턱멧새같은 것은 묻어주는 시늉이라도 했으나 이 녀석은 몸뚱아리가 커서 그냥 묻어 주기가 그렇다.
더구나 이 녀석은 일부러 사냥하기도 하고 식용으로 사육하기도 하지 않는가. 집 근처에 꿩이 많아 나도 한 번 잡아봐야 생각했었는데 제발로 날아들어 스스로 목을 바쳤으니...
그러나 괜한 살육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 잠시 혼란에 빠지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버지가 집에 안 계실 때 어머니가
"야, 니가 닭 좀 잡아라- "하시며 닭장의 한 마리를 지목하시던 그 옛날이 떠 올랐고, ..
그리하여 그 묵직한 장끼를 잡아 들고는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는 뒤안으로 향하다.
그 다음은 각자의 상상에 맡길 뿐,
하여 그 꿩은 이제 어린 시절 즐겨 갖고 놀았던 그야말로 "꿩털"만 남았고
얼마 후에는 책상 주변의 펜꽂이에 장식품으로만 남아있게 될 것이다.
△ 횡사한 비운의 꿩, 나에게 꽁무니 털만 남기고 떠나다.
.......
- 2010. 6.17(목)
'내 집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마운 정을 심다. (0) | 2010.07.18 |
---|---|
솜리 낭산연꽃축제 (0) | 2010.07.07 |
개복숭아와 개팔자 (0) | 2010.07.06 |
매실과 살구, 앵두를 따다 (0) | 2010.07.06 |
지인들의 방문 (0) | 2010.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