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두문불출하다가 해가 바뀌기 전에 두 군데는 가 봐야 될 성 싶었다. 통과의례 박물관을 짓겠다던 의형이 수 년전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그 터를 바라보며 잠들어 있는 형의 산소를 올핸 한 번도 찾질 못했다.
용인의 한 시골을 빠져 나와 다시 영동고속를 타고 가다 여주IC로 들어선 후 멀리 남한강변을 찾아 나선다.
아, 벌써 10년 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구나. 한 직장에서 나를 따듯하게 이끌어 주시던 장형같은 대선배의 농막이 그곳에 있다. 주변 풍광과 마을에 비해 유난히 튀어 보이는 요즘의 그렇고 그런 전원주택에 비해 그 분께서는 작은 농가를 하나 구입해 나무와 텃밭 가꾸며 소탈하게 지내셨다.
뒷산에서 바라 본 그 분의 시골집. 전원주택이라기 보단 그의 성품대로 농막에 가깝다고나 할까. 뒤란에 잘 꾸며놓은 밭이 있고 집 앞으로는 가슴이 툭 트이는 남한강물이 사철 유장하게 흐른다.
차에 네비게이션은 없지만 가는 길의 점동마을과 삼합리, 허름한 주유소....10년 전의 그
모습들이 희미한 모습으로 되살려 졌고 그래서 찾는 길이 어렵지 않았다.
혹시나 했지만 주인은 없었다. 대문도 울타리도 없는 집은 바람처럼 찾아 든 나를 경계하지 않았다.
여기 저기 그 분께서 흘렸을 땀과 정성의 흔적들이 가슴 저미게 하면서도 나를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대문 옆엔 그 분께서 소원하시던 소나무 몇 그루가 눈에 띄고 뒤란 텃밭에는 수확을 끝낸 듯한 고추 가지들이 하얗게 말라있다. 마치 사진첩의 사진 한 장을 꺼내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면서도 바로 엊그제의 모습처럼 그 분의 온기를 느낀다.
최근에 손질을 좀 하셨다더니 대문에 장미 아치를 만들고 집 벽에 벽돌을 덧대는 등의 리모텔링을 약간 하셨고 길가 마당 쪽으로 소나무 서너 그루를 옮겨 심었다.
집은 산을 기대고 있고 산에서 채취하는 능이가 일품이라 했다. 앞 강에서 여러가지 민물고기들을 잡아 매운탕도 직접 끓여 주시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마당 앞 잔디밭에 놓인 펑퍼짐한 바위 위에 통나무 의자 두 개를 올려 놓았다. 누군가 마음의 벗이 찾아 오면 이곳에서 오래 오래 대화를 하시나 보다.
집 옆의 작은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가 비록 갓난 아이 오줌발보다 가늘다 할지라도 그 분의 숨소리같은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마른 나무가지 같았던 매실나무는 어느 새 통통히 살이 오른 젊은 나무가 되어 있었다.
남들은 손탄다 싶어 창고까지 문단속을 하는데 한 켠에 그대로 둔 잔디깎기같은 작업도구며 살림살이들이 그 분의 열려있는 마음을 읽게 만든다.
저 앞 쪽의 비닐하우스 공사장에서 일하는 서너명의 인부들이 주인없는 집에 갑자기 찾아 든 낯선 방문객을 은근히 경계할 법도 한데 어차피 그들도 객지사람이라는 듯 그저 자기들 끼리의 일들로만 소란스럽다.
뒤란 벚나무 밑에 벤취를 놓아 이곳에서 사색에 잠겨보기도 하고 어쩌다 한 번 씩 찾아오는 지인들에게 쉼터로 제공하기도 하시는 듯.
반 시간 정도를 맴돌다 문틈으로 메모 한 장 밀어 넣고 홀연히 그곳을 떠나 오다.
며칠 안으로 오시려나.
그랬으면 좋겠는데...
요즘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했지만
어서 오셔서 다시 싱그런 봄을 준비해야 할텐데...
- 2010.12.21(화)
* 대 선배께서는 지난 2011.10.23(일) 새벽에 춘천에 있는 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셨다.
그 동안 찾아뵙지 못한 게 얼마나 후회스럽던지...
그런데 그는 빈소도 마련하지 말라 했고 육신은 대학병원에 기증해 의학용으로 사용하라고 유언하셨다.
그의 성품대로 바람처럼 구름처럼 이 세상 떠나 가신 것이다.
보다 가까웠던 분들이 도리없이 후에 추모행사를 따로 갖는것으로 고인의 넋을 위로하기로 했다고 한다.
"건강을 잃어 죽음에 이릅니다. 지난 삶을 되돌아 보면 부족한 점과 후회스러운 일이 많습니다. 남길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흔적없이 빨리 잊혀지기를 바랍니다. 저를 가까이 함께하고 아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ooo.
운명하신 다음 날 그의 유족들로 부터 발송된 것으로 생각되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하다. 미리 메모하여 두고 사후 지인들에게 보내라
유언하셨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가슴이 저며 오다.
가까웠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한 사람, 두 사람 세상을 떠나고 있다.
여생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 뿐.
- 2011. 11. 5(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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