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려있는 해야 할 일 가운데 마당에 지천으로 깔린 낙엽을 치우는 것과,
꽃밭에 가을의 잔해처럼 남아있는 국화 , 백일홍, 메리골드 등의 마른 꽃대들을 치우는 것이었다.
작업하면서 한 데 모아 뒤란 빈터에 버릴까 하다가는 양이 제법 많아 모두 태워 버리기로 하다.
되는대로 긁고 낫으로 베어서는 꽃밭 가운데 모아 놓고 불을 질렀다.
잘못하면 산불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한 번 직접 경험했던터라 깐에는 매우 조심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
엊그제 비가 있었는데도 생각 밖에 바싹 말라있고 제법 센 바람이 불어대는 바람에 순식간에 주변의 마른풀로 번지는 게 아닌가.
결과는 이렇다.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으나 잔불이 사방으로, 특히 옆의 산쪽으로 무섭게 번져 갈 때는 어찌나 당황했는지 내가 뜻 밖의 대형 사고를 내는 가 싶었다. 큰 산불을 내가 내게 되다니...
그런 생각과 함께 발로 밟고 모자로 내리치며 마치 미친 개처럼 날 뛰었다. 아니다 싶어 순간적으로 저고리를 벗어 들고는 정신없이 불길을 내리쳤다. 사력을 다해 무수히 내리쳤다. 역시 이쪽 저쪽 개처럼 날 뛰며 너 안 꺼지면 나 죽는다는 심정으로.
팔에 힘이 쭈욱 빠지고 있었다. 이렇게 산불로 번지게 되는가 싶었다.
다행이었다. 불길이 잡히고 있었다. 바람도 멈춘 것 같았다.
살았다 싶어 한참동안 가쁜 숨을 몰아 쉬다.
커다란 경계석이 방화벽 역할을 해주어 그 나마 다행이었다.
겨울을 넘긴 서양패랭이와 꽃잔디에도 불길이 덮치고...
철쭉 밑으로도... 그러나 이런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얼마나 센 힘으로 불길을 내리쳤는지 저고리 안감이 여기 저기 사정없이 찢어져 버렸다.
오후엔 비가 내린다 하니 하던 일을 마쳐야 했다. 숨을 고르며 한참동안 멍한 상태에 빠져있다가는 이젠 덤불을 안전한 밭 가장자리로 옮겨 조금씩 조금씩 모두 태우다. 그래 건방떨지 말고 교만하지 말라는 경고야. 새 봄에는 그저 착실히 일하라는...
그래도 나 정말 죽는 줄 알았다.
- 2012. 3.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