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낙엽을 치우며

소나무 01 2020. 11. 17. 15:08

떨어진 잎을 그냥 쳐다보며 이 가을을 보내고 싶지만 누가 보면 참 게으른 사람이 사는 집으로 단정지을까 봐 사실 그게 부담스러워 낙엽을 치우다.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 했으니 행여 지저분하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낙엽을 볼 때마다 오 헨리보다는 피천득의 낙엽이 많이 생각이 나서 올해도 쓸어 모아 태울까 싶었지만 제법 너른 마당을 갖고 살면서도 이젠 그럴만한 공간이 없어 웅덩이에 버리기로 하다. 또 하나, 솟아 오르는 연기를 보고 소방관서에서 득달같이 달려올 것 같은 우려감도 없지 않거니와 언젠가처럼 자칫 실수하여 산불을 낼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없지 않아서다.

마당에 떨어진 낙엽들을 부지런히 긁어 모으다. 갈쿠리라는 용어를 듣는 것 만으로도 옛생각이 아련한데 직접 손에 들고 일함이 정겹고 즐겁다.

 

 

주변에 활엽수들이 많아 떨어진 잎의 양이 많다. 그러나 아직은 일부분일 뿐 앞으로 더 많은 수고가 따라야 내집 낙엽을 모두 치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낙엽을 태우며'가 훨씬 운치 있을텐데도 '낙엽을 치우며'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니 아무래도 이건 좀 씁쓸하다는 느낌.

낙엽을 긁어 모아 손수레에 담고 있으려니 문득 나무가 나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것 같다. "한 여름 당신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줬으니 불만스럽게 생각치 말고 기쁜 마음으로 치우시오-"

맞다. 안도현의 연탄불처럼 나는 그 언제 누군가를 위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 일이 있었는가. 나도 언젠가는 결국 낙엽같은 신세일텐데 좋은 일 찾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낙엽의 일부는 마늘밭에 뿌리기로 하다. 손바닥만한 면적이지만 준비된 왕겨가 없고보니 이 낙엽을 뿌려주어도 겨울철 보온 관리가 될 것 같고, 얼마간의 시일이 지난 후 거름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 2020.11.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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