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두 번 피는 백일홍

소나무 01 2021. 11. 22. 11:51

시골에 내 집을 갖게 되면서 제일 먼저 심은 꽃이 백일홍이다. 어릴 적 집 마당의 추억을 떠올리고 싶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백일홍은 특별히 관리를 하지 않아도 잘 자라서 6월쯤부터 꽃을 피우고는 한여름이 지날 때까지 오래오래 핀다. 그리고 따로 채종을 하지 않아도 땅에 떨어졌던 씨앗들이 스스로 발아해 이듬해에 다시 예쁜 꽃을 피운다.

물론 좀 더 많은 꽃들을 보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씨앗을 뿌려 가꾸기도 한다.

 

 

여름의 시작부터 늦가을까지 여러가지 색깔의 꽃들이 쉬지 않고 피어나며 기쁨을 준다. 그때마다 어릴 적 여러 모습들을 자동으로 소환하게 된다. 호미로 모종을 떠 옮겨 심으시던 아버지의 모습 하며 꽃 한가운데 화관 모양으로 테두리를 노란 꽃잎들을 뽑아 친구와 콩나물 장사 흉내를 내던 생각...

백일홍은 한 번의 개화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찍 피었다가 진 꽃들이 인근에 다시 씨앗을 날려 적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또 한 번의 꽃을 피워 내 소탈한 자태를 보여준다. (함께 가꾸고 있는 봉숭아도 대개 그런 편이다)

그런데 올핸 따듯한 날씨 때문인지 다시 핀 백일홍이 유독 많이 눈에 들어온다. 제 철이 아니어서 키가 작은 데다 주변에 있던 꽃들이 이미 자취를 감춘 뒤여서 그 모습이 한결 돋 보인다. 

며칠 후면 채소들을 뽑아 김장해야 할텐데 밭 지금껏 밭 가장자리에 피어있는 백일홍 때문에 마음이 가볍다.

 

 

하지만 이제 서서히 찬 바람이 불고있어 안쓰럽다. 아직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눈이나 서리  내리고 물이 얼어붙기 시작하면  일시에 동사해 버릴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내가 키우는 백일홍은 거의 홑꽃에다 주황과 빨간색 계통들인데 변이가 생겼는지 노랑꽃도 보여 반갑기 그지없다. 언젠가 어느 시골길에서 겹꽃의 백일홍 씨앗을 받아 온 일이 있어 내년엔 함께 심어 가꿔보기로 하다.

 

 

잔디밭에 무수히 떨어지는 낙엽을 치우면서 이 백일홍 때문에 기분좋은 날이라며 친구들에게 카톡사진 찍어 날려 본 가을의 끝자락에서.

 

                                                                                                  - 2021.11.22(월)

'내 집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낙엽을 쓸며  (0) 2021.12.13
부겐빌레아 사랑  (0) 2021.12.13
드디어 알을 낳다  (0) 2021.08.31
여름날의 토마토  (0) 2021.07.22
닭장 확장  (0) 2021.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