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기쁜 일이다. 내가 키운 닭에서 알을 취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지난 6.12일에 병아리를 가져와 3달 반 정도를 기른 셈이다. 보통 16 주령 정도부터 알을 낳기 시작한다는데 조금 빠른 펀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동안 꼬박꼬박 사료 챙겨 먹이고 깨끗한 물 공급해 주고... 나름 공을 들인 편이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이제부터 받는 것 같기도 하고.
기른 지 4달이 가까워지자 열흘 전 쯤 알집을 미리 만들어 놓았었다. 알집 만들려면 합판과 각목이 좀 필요한데 어떻게 구입해 오지? 하며 고민을 좀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면 소재지의 작은 아파트촌을 지나다 보니 누군가가 버린 나무 캐비닛의 서랍이 버려져 있지 않은가. 차를 세우고 뒷좌석에 두 개를 포개 넣었다. 나에겐 안성맞춤의 재활용품이었다. 대형폐기물 반출증도 없는 것을 가져왔으니 좋은 일 한 게 아닌가??
뚝딱뚝딱 서랍 2개를 합치고 부수적인 보완 작업을 하여 3마리가 동시에 산란할 수 있는 알집의 방 3개를 만들다. 백봉오골계 4마리를 포함하여 모두 12마리의 암탉이 있지만 그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평소 내가 닭장에 들어가면 녀석들이 모두들 서둘러 피한다. 그런데 좀 더 높은 크기의 횃대를 새로 만들어주려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내 옆을 암탉 한 마리가 가까이에서 배화하는 것이었다. 작업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틀림없이 마땅한 산란 장소를 찾는 모양이었다. 하여 미리 만들어 놓았던 알집을 급히 들여다 놓다. 사전에 정보를 얻은 대로 밖과 어느 정도 차단되어 있는 장소와 무릎 위의 약간 높은 위치에 설치하다.
작업 후 자리를 피했다가 다시 돌아 와 알집을 살펴보니 암탉이 그 안에 들어 가 있어 산란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 내 예상이 맞았군. 그런데 전혀 의외인 것은 수탉 한 마리가 꼼짝 않고 그 옆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 아마도 녀석이 그 암탉과 정을 나눈 모양이었다. 아니 이런 걱정과 배려는 우리 인간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오히려 이런 닭보다 더 못한 경우가 적지 않으니 갑자기 들어지는 경외심.
마냥 지켜 볼 수만은 없어서 집 안으로 들어왔는데 얼마 후 산란이 끝났다는 신호음이 들린다. 지금 알을 낳았다고 줄기차게 꼬꼬댁 소리를 내지르는 것이었다.
갑자기 내 어린 시절을 소환한다. 집 모퉁이에 있던 닭장에서 연방 꼬꼬댁거리면 "알 낳았다 보다"라는 얘기를 듣곤 했으니 아련한 추억의 몇 장면을 찾아 준 셈이다..
다시 알집으로 가 보니 우와, 둥지에 예쁜 알을 낳아 놓지 않았는가. 반갑고 또 반갑고, 기쁘고 또 기쁘고.
초란을 선물한 암탉이 어찌나 예쁘던고. 수고했다는 의미로 녀석과 눈 몇 번 맞추고는 뭐라도 줘야할 것 같아 생선 잔반을 챙겨 주다. 칼슘 성분이 더욱 필요할 테니.
그 후 3시간쯤 지났는데 어떤 암탉이었는지 초란을 또 하나 둥지에 낳아 놓았다. 처음이라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또 고맙고 고맙고. 다시 그래 수고했어- 라는 말이 절로 입에서 나온다.
기르고 있는 닭이 흰색의 레그혼 품종으로 알고 있어서 알 또한 흰색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토종닭에서 보는 것처럼 누렇게 나왔다.
한 때 족제비의 침입으로 성계가 거의 다 된 닭을 모조리 잃어야 했던 황당함도 있었지만 어떻든 이제 드디어 얻게 된 알 하나로 인해 처음 병아리로 가져와 근 4개월 여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의 모습들을 되새겨 본 의미 있는 하루였던 것 같다.
- 2021. 8.3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