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수탉을 생각한다

소나무 01 2021. 12. 14. 12:04

 며칠 후 내려온다는 깨복장이 친구들에게 닭 한 마리 잡겠노라 하니 너하고 매일 눈 마주쳤을 텐데 그럴 수 있는 거냐며 의아해 한다.

 그 말이 맞다. 병아리부터 키워오며 한 식구가 되어버린 녀석을 어찌 내 손으로 잡아먹을 수 있단 얘긴가. 귀한 손님 오면 씨암탉 잡는다는 거, 그거 옛말 아닌가. 하지만 결국 우린 닭볶음탕을 먹게 되었다. 통통히 살이 오른 수탉 한 마리를 골라 밥상까지 올리게 됐는데 반려동물이 아니라 단지 가축일 뿐이라고 몇 번이나 되씹으며 서로 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넉 달 만에 내 집에서 만난 친구들. 서로 멀리 떨어 져 살기에 얼굴 보기가 쉽지 않다. 식사 장면은 지난 여름 만났을 때 마당에서 내가 재배한 야채 위주로 저녁 식사하던 모습. 식당에서 닭요리를 주문해 먹는 것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를 수 밖에 없어 시간을 뛰어 넘으면서도 음식물이 잘 보이지 않는 이 사진으로 대체.

 

 

 호젓한 산자락에 사니 텃밭만 가꿀게 아니라 병아리를 다시 키워보라는 농사짓는 지인의 권유로 지난 봄 레그혼 품종 20마리를 가져왔고 내친김에 재미 느껴 볼 심산으로 부근 한 농장에서 백봉오골계 6마리를 구입해 합사 했다.

 그렇다면 모두 26마리가 닭장 안에 있어야 할 텐데 반년이 지난 지금은 고작 12마리. 병사했거나 야생고양이 공격에 그리 된 사연도 있지만 상당 숫자는 이런저런 사유로 주인인 내게 당해 사라졌다. 무슨 이벤트성 거리가 생기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동안 한두 마리씩 잡아 해치운 것이다. 그 모두가 수탉들이다. 그게 웬 말이냐고? 해서 아무래도 좀 어쭙잖은 변명을 늘어놓아야 될 것 같다.

종이 상자에서 기르다가 땅이 있는 생활공간으로 옮기다. 봄볕이 좋은 듯 나른한 모습들이다. 이 때 쯤이 제일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것 같은데 부화한지 4주차 쯤 되었을까.

 

 

 사실 닭과의 인연은 지난해부터였다. 앞의 같은 지인이 토종 병아리 20수를 줘 잘 기르고 있었으나 어느 날 밤 족제비의 급습으로 한순간 전멸되는 참사를 겪는다. 그것도 아주 참혹한 모습으로. 얼마다 황당하고 허망하던지. 닭장을 허술하게 지은 탓이었다. 내 주제에 무슨 양계였던가 싶어 낙담해 있던 중 다시 시작하라고 지인이 기회를 주었다. 처음엔 손사래를 쳤으나 지난해의 치욕을 만회해보겠다 싶어 족제비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가라앉히며 이번에는 패널과 철 그물 등의 자재를 구입하여 제법 튼튼하게 축사를 짓고 새 식구들을 받아들였다.

 닭들은 무럭무럭 커 갔고 서서히 산란 시기가 다가왔다. 그런데 세어보니 수탉이 10마리나 되지 않은가. 너무 많은 개체 수였다. 병아리 때는 암수 구별을 할 수 없었으나(건네주는 입장에서는 암수 구별을 해주지 않기에) 점차 성장하게 되면서 벼슬과 꼬리 모양 등으로 뚜렷이 암수 구별을 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수탉에 대한 나의 관심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수탉은 한 마리가 암탉 15 마리 안팎까지 감당하며 교미를 한다 하니 내 경우엔 2 마리면 있으면 충분했다. 수탉은 단지 유정란을 만드는 역할을 할 뿐 실질적으로 유정란과 무정란의 영영 성분 차이가 없어 수탉의 존재는 미미한 것이었다.   부화용이 아닌 순전히 끼니용 달걀을 얻고자 하는 나에게 수탉은 다만 애물단지 바로 그것. 보자 하니 수탉 요 녀석들은 서로 서열 경쟁을 하느라 소란만 피우고 시도 때도 없이 목청을 뽑아대는 바람에 소음화 되고 있었다. 아는 이가 그 때문에 이웃집 미안해서 양계를 접었다 하지 않았나. 무엇보다도 교미하느라 수시로 암탉 등에 올라타는 바람에 암탉들은 등이 헤질 정도의 보통 수난을 겪는 게 아니었다. 그냥 육계로 둘 수도 있으나 교미하는 시기부터는 육질이 많이 떨어지고 또 때마다 잡아야(?) 하는 수고와 고통을 어찌한단 말인가.

철제로 지어진 공간이 좁아 보여 풀이 있는 곳으로 임시로 확장하다. 낮게 나마 나이론 그물을 두른 것은 외부로의 탈출을 막겠다는 것 보다 고양이 등의 야생동물로 부터 보호하겠다는 의미가 크다. 위 쪽까지 그물을 치지 못해 매의 공격이 염려되기도 했으나 무시하기로.

 

 

닭은 기본 배합 사료 외에 왕고들빼기 같은 풀을 즐긴다.

                                           

 뿐만 아니었다. 배합사료 대신 닭들이 좋아하는 왕고들빼기를 이러다 멸종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주변 들녘을 뒤져 먹이로 조달하고 이것저것 자연식을 넣어주면 그때마다 수탉들이 독차지하며 제 몸집만 키우는 것 같아 아주 미운털이 박혀서는 빠른 결단과 행동이 필요했다. 

 결국 품종별 각 1마리씩만 남기고 결행에 옮기겠다는 수탉 살생부를 머릿속에 만들어 적당한 기회를 노리기 시작.

그런데 아무래도 난감한 것이 모든 걸 꼭 내손으로 처리해야 하느냐는 거부감이었다.

아니 멀쩡한 생물체 숨통을 어떻게 할 것이며, 아니 또 직접 칼을 들어 이리저리 한다고? 아이쿠, 정말 날마다 눈 마주친 녀석들인데.. ”

 그 옛날 네가 요놈 좀 잡거라하시던 어머니의 주문에 눈 질끈 감고 죽어라 닭 모가지를 비틀면서 부재중이던 아버지를 얼마나 원망했던가, 온몸에 전율이 일던 그 오싹한 경험을 다시 해야 한다니.

좋은 방법이 없을까 잔머리를 굴리다가 가까운 읍내 장터 닭집을 찾아 좀 잡아 달랬다. 그런데 요즘 일반 가정의 것은 취급하지 않는다는 대답. ‘AI 때문에 매주 수요일은 쉽니다라는 표지판이 출입구에 붙어 있어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4천 원이면 통돌이로 손쉽게 처리해 줬다 들었는데...

 비장한 각오를 할 수에 없었다. ‘나는 어쩌다 닭 잡는 사람이 되었나?’ 온갖 넋두리를 쏟아내며 시차를 두고 도합 8마리를 차례차례 해 치워야만 했다. 그런데 어라, 한 번, 두 번... 횟수가 늘다 보니 요령이 생겨 끽소리도 못하는 저항 불가 상태로 만들어서는 털을 일시에 제거하고 그리고는 착착 부위별로 선별해 내는 노하우를 터득하게 된다. 독기를 품는다는 게 참 무서운 것이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힌 주인 입장에서 남아있는 녀석들 쳐다보는 것도 그렇고 남 싫은 안하는 내 성격으로 봐서도 정말 닭살 돋는일이었다.

 하여 과감히 손을 씻기로 했다. 더는 그런 작업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 것이다. 이건 남아있는 수탉도, 암탉에게도 마찬가지여서 녀석들에게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꺼림칙하기만 하여 도무지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가 크지만 반년의 시일이 지나면서 달걀이 안정적으로 얻어지는 본래 취지의 사육환경으로 만들어졌으니 그럴 수밖에. 사족을 보태면 녀석들이 제 동료를 포획해 가던 나를 공포와 원망의 대상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해서다. 녀석들은 주인을 알아본다. 그냥 단순한 닭대가리가 아닌 것이다.

 

마당에 풀어 놓으면 온통 흙가루를 뒤집어 쓰며 흙목욕을 즐긴다. 그러다가 동작을 멈추고 있으면 마치 죽어있는 것첨 보여 처음엔 깜빡 속아 당황해 하기도.

 

 

 

백봉오골계(좌)와 레그혼(우)이 복숭아 나무에 올라 휴식을 즐기고 있다.  높은 곳은 쉽게 오르나 내려올 때는 여러 번 두리번 거리며 조심스럽게 착지한다. 병아리 때 부터 같이 컸기에 잘 어울리는 편이나 백봉오골계는 철저히 자기들 중심의 그룹으로 어울려 다닌다. 

 

 

 

                                            왼쪽은 백봉오골계 알. 가운데는 평균적인 알. 그리고 레그혼 두 마리

                                       정도가 오른쪽의 큰 쌍란을 낳는다.

 

 

 

 각설-, 아침 일찍 철 그물의 보호시설 문을 개방하면 일시에 우르르 쏟아져 나와 풀을 뜯고 벌레를 찾아 흙을 헤집는다. 단 며칠 만에 풀밭을 초토화시켜버릴 정도로 먹이활동이 왕성하다. 때론 높이 점핑하며 날아오르기도 하고 흙가루를 날리며 흙 목욕을 즐긴다. 그렇듯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이 참 좋다. 강아지처럼 잘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이 나타나면 일시에 몰려드는 모습도 흐뭇하고 살짝 몸통을 만져도 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곁을 지키며 녀석들만의 소리와 행동도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만큼 정이 들었다. 때마다 먹이와 물을 챙겨줘야 하고 청결유지를 위한 바닥 청소 같은 수고와 그 때문에 여러 날 집을 비울 수 없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녀석들은 꾸준히 1등급의 달걀로 보상해 주고 있지 않은가. 물론 미운 짓을 할 때도 없지 않다. 먹이통이나 알집 주변 등 장소 가리지 않고 배변을 해대고 밖에서 제 몸 노리는 적들이 많은데도 방사장 탈출을 시도하면 순간적으로 막대기를 집어 혼쭐을 냈다. 하지만 그것도 닭 본래의 습성과 본능일 텐데 내가 인간의 잣대만 가진 게 아닌가 싶어 그런 위협적인 제스처도 그만둬 버렸다.

 이제 2마리만 남은 수탉, 두 녀석은 어김없이 새벽을 열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됨을 알려주고 먹이를 발견하면 특유의 소리로 암탉들을 불러 함께 나눈다. 또 위험이 닥치면 역시 특유의 소리와 몸짓으로 암탉들을 보호하는 마치 보스와 같은 범상치 않은 면모가 수탉에게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나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이미 적잖은 동료들을 떠나보냈으니 나는 수탉들 그 앞에서 슬그머니 몸을 낮춘다. 그리고는 녀석들 앞에서 혼잣말로 구시렁거린다.

얘들아, 어떻게 예전의 그 좋지 않은 기억들일랑 좀 지워줄 수 없겠니?”...

- 그저 부디 그 영혼들이 자유롭기를. 

 

 

                                             구태여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생각했지만 결국 닭장에 간단하게 비닐을 둘러

                                       보온 처리를 해주다. 무엇보다 닭이마실 물이 얼어붙지 않도록 해보겠다는

                                       이유가 크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닭장에 비닐 막을 씌워 방한작업을 마쳤지만 아침 산 공기가 차갑다. 닭장 문을 열어주며 또 혼자 구시렁거린다.

애들아, 추운데 잘 잤니?”

 산자락에 터를 잡아 텃밭 채소와 화초 가꾸며 사는 즐거움이 적잖지만 여기 닭이라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교감하며 지낼 수 있음이 또한 작은 기쁨이요 행복 아닌가 싶다.

 

                                                                                     - 2021. 12.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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