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은 유난히 길었던 것 같다. 겨우내 했던 일이라곤 뒷산에서 땔감 마련해 온 게 전부였을 정도로 거의 매일 움츠리고 지낸 편이다.
계절이 운행은 어김없고, 다시 봄이 찾아들었음이 유난히 각별하다. 그 각별함의 사유란 아무래도 나이 탓 아닌가 싶다. 어쩌다 친분 있던 사람들의 부고가 불쑥 날아들어 오면 어쩔 수 없이 '죽음'이란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나도 이미 '노인'의 반열에 들어서 있다는 것에서 생사불이(生死不二)의 이치를 새삼 깨닫게 된다.
누구나처럼 마음이 젊다 생각하기에 지금도 밖의 새로운 직장에서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겠다 하면서도 그러나 그것도 결국 욕심 아닌가 싶어 진즉 은퇴했으니 내 하고 싶은 것 하며 조용히 지내자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고는 다시 찾아든 봄에 농기구를 잡아 들고 텃밭으로 가다. 그래도 흙냄새 가까이 맡을 수 있음이 얼마나 기분 좋으냐는 것에 자족하면서.
무리하지 않으면서 내 나이의 육체노동에 합당할 정도의 땅을 일구다. 우선은 뒤란의 옥수수와 고구마 밭. 퇴비를 적당량 붓고 쇠스랑으로 흙을 파고 뒤집으며 밭을 꾸미다. 애초에 거름기 하나 없던 흙이었으나 해가 거듭될수록 암갈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어 흐뭇하다.
텃밭 농사를 지으면서 처음부터 유기농을 고집했기에 해마다 퇴비를 구입해야 했다. 처음 몇 해 동안은 계분을 주문하여 사용했으나 얼마 후 대량으로 구입하지 않으면 배달이 불가하다 하여 결국 면소재지 농약 방에서 비닐포장 퇴비를 구입하여 쓰다. 한 포에 3천 원. 다른 농자재 값은 모두 올랐다는데 퇴비만은 몇 해 전부터 가격 변동이 없어 고마운 마음.
오늘 꾸민 밭은 지난해부터 늦가을 닭들의 활동공간으로 개방했었다. 닭들이 더 넓은 곳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거니 먹이 활동을 할 수 있어 좋았고 그런 과정에 닭의 분변과 음식 잔반과 같은 이런저런 것들이 뒤섞여 얼마 간의 시일이 지나면 흙에 거름기가 많아질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봄이 되면서 닭들을 원래의 공간으로 축소해야 했기에 비닐 그물의 울타리를 손 보면서 기존의 닭장 면적을 조금이라도 넓혀 보다. 출입문도 새롭게 마련하고.
꽃들이 그야말로 경쟁적으로 피기 시작하여 삶의 생기를 돋게 한다. 다리 아프도록 종일토록 일해도 꽃을 대할 수 있어 피곤하지 않다. 자연과 더불어 지내다 보면 한가로울 때의 헛된(?) 상념들이 어느새 사라져 버리게 되고, 아직은 건강함 속에 작은 보람들을 얻을 수 있어 다만 감사할 따름. 다시 찾아온 봄을 새 마음으로 맞아야...
- 2022. 3.1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