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름이 이런가 싶다. 꽃이름이다. 꽃모양의 예쁜 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종 모양의 개별 꽃은 아주 작지만 엷은 자주색을 포함하고 있어 귀엽다. 작은 꽃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꽃 형태를 이루며 아래를 향해 핀다. 전문 용어로 총상(總狀) 꽃차례라 이름하는데 이 용어 역시 어색하고 어렵다. 오래전부터 가꾸어 온 말발도리와 이웃사촌인 듯 나무와 꽃 모양이 거의 비슷하다. 다만 꽃의 색이 다를 뿐.
내 집 울타리에서 자라고 있는 이 꽃에도 이야기가 있다. 지난 글에서 놓치는 바람에 선물해 준 이가 서운하겠다는 생각이 일어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느 여름 날 내 집을 찾은 후배와. 정원용 수도에서 캠핑생활에서 사용할 용수를 차에 공급하고 있다.
직장 후배인 H는 퇴직 후 캠핑카를 한 대 구입했다. 그 역시 자연을 좋아하는지라 그 차를 타고 곳곳을 누비며 나무를 찾아다녔다. 이야기가 있는 나무들을 찾아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는데 유독 전라도 땅을 드나드는 기회가 잦았다. 은퇴 직전 전주에서 근무하게 된 인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은 남원에서 어느 날은 구례에서, 이곳저곳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는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나무들에 대한 기록작업을 해 나갔다. 그 생활이 참 자유롭고 즐겁고 그리고 의미 있으리라 여겨졌다. 그는 언젠가는 그동안의 탐사 여정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펴 내겠다는 목표가 가지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답사 길에 있는 내 집에 가끔 들러 그가 대했던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함께 나누면서 긴 밤시간을 함께 하기도 했다.
마악 개화한 만첩빈도리. 여러 장인 꽃잎으로 종 모양이다.
만첩빈도리와 같은 꽃모양의 말발도리.
좀 길었다. 이 만첩빈도리는 그가 사 온 것이다. 올 때마다 뭔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사 오고는 했는데 시골 마트 앞에서 화분에 담아 팔고 있어 그것을 포함했단다. 화분에 담겼던 작은 묘목이 지난해부터 꽃을 피우더니만 올핸 제법 키가 커져서 적잖은 꽃송이들을 매달았다. 당연히 그가 생각나서 꽃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고 아예 이참에 그의 목소리라도 들어봐야 되겠다 싶었다.
"전화 늦게 받는 걸 보니 밭에서 일하고 있구먼 -"
"예, 맞아요. 이것저것 해 보려는데 잘 되질 않네요. ㅎㅎ"
"초보가 너무 욕심부리지 마.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이 되네"
그는 캠핑카 생활을 끝내고 서울을 떠나 고향인 강원도 정선 땅에 작은 농가와 밭을 구입해서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고사리, 마늘 같은 작물을 심었는데 좀 시원치 않고, 땅콩이 맞는 것 같아 올핸 특히 땅콩 재배 면적을 늘렸다고. 정선엔 언제 올 거냐고 묻는데 답을 못했다. 적어도 이 만첩빈도리가 피어있는 동안만큼은 그 친구 생각 많이 하게 되는 것으로 상쇄가 되기를.
원하던 책은 생각보다 수월하지가 않아 아직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니 모쪼록 잘 진행되어 세상에 나오길 바라며.
- 2023.5.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