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흐름을 따라 꽃을 볼 수 있도록 나름 종류별로 선택해 화초를 심어왔다. 5월 중순, 지금 이 시기의 내 집 마당에 안젤라장미와 노랑꽃창포가 절정이다. 그냥 장미와 난초라 하지 않고 굳이 구체적으로 꽃이름을 표기하는 까닭은 꽃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최근에 나온 한 책을 보니 꽃이 가진 언어, 말하자면 꽃말을 이용한 꽃과 꽃의 배열을 통해 암호화된 메시지를 전하던 관습이 빅토리아 여왕 시대 등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꽃말과 관계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요즘에는 그 시절처럼 꽃말 속의 어떤 의미를 생각하면서 꽃을 대하는 그런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어떤 인연 속에서 꽃들이 직접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많은 사례들이 있을 것 같다.
두 꽃 모두 나와 함께 15년 정도를 함께 살고 있는 편이다. 장미의 경우 여러 색깔과 여러 종류를 화단에 심었는데 마사토의 땅에 무지한 채로 심어 모두 고사해 버렸다. 그래서 이후에는 덩굴장미, 처음엔 주로 빨간색 덩굴장미를 구입해 심었는데 이것은 내 집의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주었다.
어느 해 종묘원에 들렀더니 안젤라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장미 묘목이 있었다. 거기에 특별히 내 시선이 꽂히게 된 것은 순전히 딸 때문이었다. 딸의 세례명이 그 안젤라였다. 이 장미 묘목에 어떤 이유로 이탈리아의 안젤라 성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장미꽃이 피어날 때마다 딸아이를 생각하며 서로 떨어져 지내고 있는 처지의 스산함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꽃은 앙증맞고 예쁜 분홍색 꽃을 피웠으며 향기가 좋았다. 그래서 해마다 이 꽃이 필 때면 이제는 출가외인이 된 딸아이를 생각하며 함께 지내던 시절을 회상해 보기도 한다. 얼마 전에도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냈다.
"안젤라가 피었단다. 네가 지금 나와 함께 있구나"
노랑꽃창포는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 분이 보내주신 것이다. 분양해 주신다는 인터넷상의 글을 보고 청했더니 택배비까지 부담해서 보내셨으니 얼마나 고마웠던지. 감사의 마음을 떡으로 대신하는 것으로 그쳤지만 큰 함지박에 몇 포기 심어 연못에 담갔더니 건강하게 자라줬고 몇 년이 지나자 상당한 양으로 번졌다. 그대로 두면 연못 한쪽을 메울 것 같은 기세여서 울 안 이곳저곳에 포기 나눔으로 하여 옮겨 심었다. 물과 습기를 좋아하는 화초라서 메마른 땅에 심으면 고사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생각 밖에 적응을 잘하며 번식했고 때로는 씨앗이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가 의외의 장소에서 새 순을 내밀고는 하여 더욱 여러 곳으로 퍼졌다.
분양받던 때, 기회가 되면 내 집에 한 번 다녀 가시라고 청했지만 답이 없으셨다. 당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지금 쯤은 어느 마당 넓은 집에서 여러 화초를 가꾸시며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계시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래서 노랑꽃창포의 노란 꽃을 대할 때마다 그 꽃잎 속에서 분명 온화한 미소의 그분 얼굴을 상상해 보곤 하는 것이다.
아, 산딸나무도 있다.
지금 하얗게 꽃이 피고 있다. 산딸나무 꽃은 하늘을 향해 피는지라 더욱 돋보인다. 내 직장 동료였던 이가 집들이할 때 심어 준 것이니 18년이 되었다. 처음 몇 해 동안은 몸살을 하는 것인지 애초의 자태 그대로인 채 꿈쩍을 하지 않더니만 이후 많이 자랐다.
그 이는 드라마 연출로 꽤 이름을 날리던 때에도 집을 일부러 산자락에 마련해 화초를 가꾸며 전원생활을 즐기던 자유롭고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은퇴 후에도 연극 연출과 영화 단역 등으로 출연하며 연기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 참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통화의 기회가 있을 때면 꽃이 필 때 더욱 그렇지만 나무를 볼 때마다 그대가 생각난다고 고마움을 전하곤 한다.
5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꽃 속에 담겨있는 지금의 이런 이야기들이 며칠이 지나고 지는 꽃잎 속에 지워져 버리지 않을까 못내 아쉽고 이후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또한 아쉽다.
1년의 기다림이라는 그 세월의 흐름이 지금의 나에겐 너무 길기만 한 것 같아서 더욱 그렇기만 하고.
- 2023. 5.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