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살구 수확

소나무 01 2023. 6. 17. 11:42

수확이라고 까지 표현할 게 못되지만 예년에 비해 많은 양을 거둬들인 기쁨이 있다. 살구나무를 심은 것은 내 집 역사와 함께 한다. 거의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으면 어느 정도 거목으로 성장해 있을 법도 한데 마사토 밑이 암반 수준이고 보니 결실을 맺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과수다.

아주 오래전 전남 보성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을 걷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살구를 본일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몇 개 줍다가 고개 들어 올려다보니 커다란 나무의 가지마다 노란 살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지 않은가. 절로 나오는 탄성.

낯선 곳에서 몇 개  맛있게 먹던 그 추억 때문에 심어진 나무다.

 

 

                                            딱 한 그루 있는 나무의 개복숭아를 따면서 그 옆에 떨어져 있는 살구를 주워 담다.

 

거름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해마다 스무 개 남짓 열리곤 했는데 올핸 이파리보다 많은 양이 매달렸다. 그러려니 하면서 그냥 지나치려다 좀 더 묵혀서 먹어야겠다 싶어 적당한 양을 주웠다. 주방에 가져가 이틀 정도 놔두면 씨와 살이 쉽게 분리되면서 아주 달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익어가는 상태를 보면서 따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새들이 가만두질 않았다. 잘 익어가는 것은 주인 먼저 쪼아대어 불량품을 만들어 놓았다. 안 되겠다 싶어 모두 털어야겠다고 결정. 처음엔 단순히 장대만을 생각했는데 "아 -, 흔들면 되지! "

그랬더니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진다. 거의 익은 살구는 아주 쉽게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주워 담는 재미가 쏠쏠했지만 이걸 언제 다 먹나 싶기도 해서 사실 좀 귀찮아하기도. 

 

 

왼쪽이 개량종 대왕 살구. 오른쪽이 재래종. 심은지 15년 정도 된 대왕 살구는 꽃만 요란했을 뿐 결실로 이어지지 않더니만

올핸 열댓 개 정도가 달렸다. 

 

잼을 만들면 좋겠다 싶지만 그 과정이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 그냥 포기.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있으면 언제 날아들었는지 쉬파리가 극성이어서 쉽게 상해 버리는 바람에 며칠 보관하기가 어렵다. 그런 것들 선별해 내면서 먹어야 하는데 암튼 적은 양이 아니다.

찾아오는 사람에 내놓을 수 있는 맛보기 용이라고나 할까. 그런 면에서는 매달린 채로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는 개량종 보리수 신세나 매 한 가지여서 그런 게 좀 아쉽다.

 

 

  복숭아나무도 몇 그루 있는데 이상하게도 올핸 벌레가 전혀 없어 잘 익어가고 있다. 지난겨울에 큰 추위도 없었는데. 그간 벌레 먹어 무수히 떨어지는 것을 보고 좀 솎아 주고 농약을 쓰라는 권유들이 있었지만 알이 작은 데다 얼마나 먹겠냐 싶어 못 들은 체했었다. 사실 귀찮다는 마음이 더 컸지만. 그런데 올해는 다만 얼마쯤이라도 제대로 맛볼 수 있을 것 같은데...

                                                                                       

                                                          - 2023. 6.1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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