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옆으로의 용화산 여명. 오전 6시.
오늘 아침 여명이 참 좋다. 이런 모습 볼 때마다 시골 생활의 기쁨을 새삼 맛본다. 오늘 가까운 곳으로 산행하려니 했는데 그 마음을 더욱 부추기는 듯.
집 뒤편으로는 내가 기대어 살고 있는 미륵산, 옆으로 용화산, 그리고 앞 쪽으로는 야트막한 오금산. -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산이다. 오늘은 조금 더 옆의 봉실산 산행으로. 행정구역상으로는 완주군 비봉면에 속하는 산이다.
봉실산(鳳實山, 374m) 줄기에는 옥녀봉이라는 봉우리가 하나 있다. 그런데 그 산봉우리 꼭대기에 다른 산들의 능선 윤곽과는 다르게 제법 큰 나무가 서 있어서 지나치며 볼 때마다 궁금했던 바, 나무 형태를 보면 소나무는 아닌 것 같았는데.
어느 날 올라가 봤더니 상수리나무 3그루가 형제처럼 자라고 있었다. 비바람이 거칠 텐데 그걸 견디어 내며 자라고 있음이 가상했다.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오늘 다시 올라 보니 결실기라서 가지마다 도토리를 매달았다.
옥녀봉은 373m, 능선을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봉실산 정상보다 1m가 낮다. 그때 능선을 따라 이동하며 정성까지 올랐어야 했는데 먼 거리다 싶어 포기하고는 옥녀봉의 상수리나무 존재만 확인하고 하산해 버렸다.
옥녀봉 8부 능선 쯤에 있는 전망대에서 전주시가 쪽을 바라봤으나 운무로 뿌옇게 가렸다.
이번엔 봉실산 정상까지 가 보겠다고 다시 나서다. 그 사이 산행 초입이 바뀌어 있었고 이런저런 표지판 그리고 상당히 길게 깔렸다고 생각되는 야자수 매트 길, 체력단련 시설, 나무 계단 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약간의 생경한 느낌. 예전의 자연스러운 분위기들이 반감된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고.
산행 중에 딱 2가지 꽃만 볼 수 있었다. 산박하
며느리밥풀꽃
옥녀봉에서 봉실산 정상까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포함해서 완만하거나 약간의 경사로를 짜라 이어진다. 30여 분 걸어 도착했는데 그런데도 그땐 왜 포기했었는지.
시야에서 잡히진 않지만 단조로운 수종 사이로 인근의 호남고속도로와 6차선 산업도로의 차량 소음이 산행 처음부터 있었기에 아무래도 조금 삭막하다는 느낌. 그래서 새소리를 듣고자 했음은 과한 내 욕심이 되었다.
봉실산 정상부에서의 남쪽 조망. 멀리 모악산이 보인다(사진 가운데)
정상은 비좁고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지만 사이사이로 너른 들판과 공장지대 아파트 숲등이 조망되고 멀리 고산지대 능선들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다. 주로 완주산업단지와 아파트 단지 사람들을 위한 산행 겸 산책 코스가 아닌가 싶다.
잠시 머무른 후 원점 회귀 코스로 하산할 까 했는데 옥녀봉에서 내려온 급경사 코스가 아무래도 맘에 걸린다. 반대편 추동 마을 쪽으로 내려 가 둘레길을 따라 주차장까지 가기로. 추동마을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은 그곳에 있는 추수경 장군 묘소까지 찾아가 보겠다는 생각에서다.
내려오는 길도 상당한 급경사였다.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좌로 200m 거리에 학림사라는 표지판이 있어 잠시 둘러보다. 혹 배울 학(學)이어서 다른 사찰의 분위기와 다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학이 많이 산다는 의미의 학림(鶴林)이다.
추동마을은 추수경(秋水鏡,1530-1600) 장군과 인연이 있다. 추 장군은 임란 때 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인데 곽산, 평양, 개성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고 전주에 주둔해 있었으며 인근 안덕원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순국했다고. 함께 임란에 참여한 다섯 아들과 함께 환국하지 않고 이 마을에 머물러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마을도 그의 후손들이 이뤄 추동(秋洞)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다.
죄측 옥녀봉에서 오른쪽 봉실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이 봉실산 아래 추동마을이 있고 마을 안쪽으로 추 장군 묘역이 있다.
추수경이 전투에서 중상을 입긴했으나 어찌하여 돌아가지 않고 조선 땅에 남았을까.
고려 인종 때 남송에서 함흥 연화도에 정착한 추엽이 한국 추 씨의 시조가 된 바 있는데 그의 5대 선조 추유가 고려 공민왕 때 당시 어지럽던 나라 분위기를 피해 중국으로 다시 귀환했으며 후에 명나라 건국 공신이 되었다는 기록. 그걸 보고서야 이해를 하게 되다. 선조는 그의 사후 충장군의 시호를 를 내리고 완산부원군으로 봉했다.
전주에 주둔하며 전주사고를 병화 속에서 끝까지 지켜냈다고 하는데 이런 인물의 묘역이 이곳 봉실산 아래 있는데도 그동안 전혀 알지 못한 채 처음 찾아와 잠시 추모함이 조금 부끄럽다.
두어 시간의 산행으로 끝내려 했는데 오는 추 장군의 묘역 탐방으로 걷는 시간이 두 배로 늘었다. 봉실산 둘레길이 따로 개설되어 있는데 나는 더 외곽으로 한참 돌아 마실길을 걸은 셈이다. 추동마을 집집 마다에는 오래된 감나무들이 있었고 가지마다 커다란 대봉감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으며 길 가의 배롱나무 마다에는 아직도 분홍꽃이 피어 있었다.
- 2023. 9.23(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