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으로 낮게 뻗어있는 작은 야산이 오금산이다. 날마다 대면하며 살면서도 두어 번 올라가 봤을 뿐 그저 늘 바라만 보는 산이다.
가을바람에 나뭇잎이 하염없이 지고 있어 갑자기 앞 산에 가고 싶어졌다. 아직 한 번도 걸어 본 일이 없는 그곳 능선길을 걸어보리라 생각하면서.
오후 서너 시부터의 비 예보가 있어 점심 후 곧바로 찾다. 높이가 125m에 불과하니 그냥 산책하고 오겠다는 가벼운 마음.
오금산(五金山)은 백제 서동 설화와 얽혀있다. 여기에서 다섯 덩이의 금을 캐서 오금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여기에서 캐낸 금들을 신라 진평왕에게 보내 선화공주를 얻게 되었고 그 자신은 30대 백제 무왕이 된.
이 산이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모양이다. 토성이 구축되어 있어서 "익산토성"이라 불리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발굴결과를 보면 토성이 아닌 석성이 조성됐었다는 것이다.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 몇 곳에서 확인된다. 정상부에 우물의 흔적이 발굴되어 복원되어 있다. 어떤 형태로든 군대가 주둔해 있거나 주민들이 살았을 것이다.
전망대에서는 멀리 익산 시가지의 고층 아파트 건물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 편에서는 금마 면소재지와 멀리 봉동, 전주 쪽이 내려 다 보이고.
시야 확보를 위해 주변의 나무들이 제거된 한쪽 방향의 능선 길을 따라 걸어본다. 역시 수종이 단조롭다. 거의 소나무와 참나무들이다. 이제 낙엽이 제법 수북이 쌓여 있어 그래도 운치 있는 산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휴일인데도 찾는 이가 없어 여기에서도 나 혼자만의 차분한 산책.
저 쪽 산아래에서 몇 달 전 석축으로 둘러진 지하 곡식창고가 발굴돼 무왕 시기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는데 발굴 진행 중이라서 일반인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고 현장도 대형의 천막으로 덮여 있었다. 아무런 대안이 없는 현실이지만 그럴 땐 그 "일반인"이란 딱지를 벗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지기도.
3년 동안의 부흥 운동에도 성과 없이 그야말로 철저히 망해버린 백제이기에 그 흔적들을 땅속에 묻혀있는 것에서 찾아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 많은 것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1,400년 전의 모습들이 내가 사는 이 땅에서 살아 움직일 수 있기를.
다시 되돌아 나와 북쪽 방향의 정상부에 서면 익산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미륵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자락에 안식처를 정한 내 집이 보인다. 나만 알아볼 수 있는 한 점의 숨어있는 듯한 존재로.
한참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흐뭇해한다. 내가 원하던 대로 틀림없이 고향 산자락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증명사진 같아 그 행복감으로 오금산을 내려서다.
- 2023.11.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