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 싶으면서도 마지막 단풍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기대뿐이었다. 내변산이 단풍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산세가 제법 깊어 부분적이라도 오색의 물결을 볼 수 있기를 바랐었다. 바다도 볼 겸.
부안 내변산(內邊山) 쪽은 참 오랜만이다. 채석강이 있는 외변산과 새만금 쪽 바다는 가끔 씩 갈 기회가 있었지만 산 쪽은 한두 번 정도.
하서면에서 내변산 주차장으로 가는 일부의 길은 양 옆으로 벚나무가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봄이면 만개한 화사한 벚꽃들로 기분 좋은 꽃길이리라. 봄이면 온통 나무 전체로 꽃차림을 해서 인지 벚나무는 잎을 다른 나무들보다 유독 일찍 떨어트린다. 그래서 벚나무는 봄을 위한 나무다. 입동이 하루 지난 오늘 나는 지금 나목이 된 좀 을씨년스러운 벚나무 길을 지나고 있다.
국립공원 지역이라서 방문객들이 많을 것이란 예상은 하고 있지만 유치원 원아들의 행렬로부터 친목회나 직장인들의 단체 방문으로 관광지다웠다. 등산장비 차림의 산행인은 볼 수 없다. 이런 모습을 생각하며 오늘 평일을 택해서 여기 왔지만. 방문객들 대부분은 모두 직소폭포 쪽으로 향했다. 그곳까지는 평탄한 길로 산책하듯 관광할 수 있을 것이고 나는 한쪽으로 방향을 틀어 혼자만의 차분한 산행길에 나선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내변산의 한 쪽 정상인 관음봉(觀音峰, 424m). 직소폭포 쪽으로 올라가는 코스가 있으나 직소폭포는 그동안 몇 차례 가 본일이 있으므로 하산하는 쪽에서 역으로 올라기로 하다.
국립공원답게 등산로는 잘 닦여있었다. 산 아래 부분이어서 인지 단풍잎이 아직 붉어진 채로 만추인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정도의 단풍을 볼 수 있음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내변산 자체가 바위산이다. 등산로는 계속 경사로여서 오르다가 숨이 가쁘면 잠시 멈춰서 숨고르고 그리고는 다시 오르는 일을 반복하다. 저 멀리로 레이더기지가 있는 내변산 정상의 의상봉이 보인다. 저기도 한 번 올라 가 보고 싶은데 언제 기회가 될지 모르겠다.
가마터삼거리를 지나 세봉을 거쳐 관음봉까지는 대략 3Km 정도가 되는데 바위산 능선길을 따라 돌고 돌아서 가는 코스다. 양쪽으로는 직벽에 가까운 경사가 급한 길이어서 군데군데 "추락위험"이라는 경고판이 붙어있다. 조금 전 내 앞 쪽으로 보이던 의상봉이 어느새 방향을 틀어 내 뒤쪽 편으로 보이고 그러다가는 다시 측면에서 나타난다. 그만큼 산 능선을 따라 우회하면서 걷고 있다는 의미다. 돌고 돌아서 목표지점을 향하고 있지만 피곤함과 지루함을 덜 수 있는 것은 사방이 시원하게 조망된다는 것. 나뭇잎이 모두 져버린 겨울 초입인 데다 정상부 능선길이라서 가능한 것이리라.
고갯길을 지나고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는 걸음을 반복하다 보니 더 멀리로 서해의 위도가 보이고, 줄포만이 보이고, 곰소항이 보이고 그리고 바로 아래쪽으로 내소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래전부터 가끔 씩 들렀던 곳이라 모두 정겹고 익숙한 곳이다. 그래서 낯선 곳이 아니다.
그동안 여러 산을 찾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오르내리길 반복하며 정상에 오른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내변산 관음봉 산행의 특징이 그것인 것 같다.
그래서 425m 관음봉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내 집 뒷산의 미륵산 높이가 이와 비슷한 430m로 40여 분이면 오를 수 있는데 여기는 2시간 20여 분이 소요되었으니 그만큼 오르고 내리면서 돌고 돌아 도착한 것이다.
날씨가 흐려 시야가 선명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산과 바다를 함께 조망할 수 있어서 나름 보람 있는 산행이었다.
- 2023.11. 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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