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대하는 산사 풍경
수백년된 빛깔고운 소나무 숲이 장관이었다. 우리 땅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었나 싶을 정도로 청정하다. 이런 저런 발간 매체를 통하여 국내의 이름 난 풍광들은 익히 알고 있거나 한번 쯤은 가 봤던 곳인데 봉곡사 숲길은 생소하였다.
천안 광덕산 하산 길에 그냥 한번 둘러 보고 가겠다고 가볍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봉곡사 소나무길을 대하고 나니 나의 탐방 우선 순위가 거꾸로 되었음을 여기에 와서 느끼게 되었다.
봉곡사 뒤를 에워싸고 있는 산이 봉수산임을 또한 여기에 와서 알게 되었지만 이 다음 나의 산행 코스는 무조건 봉수산이 될 것 같다.
봉곡사(鳳谷寺)는 아산시 송곡면 유곡리에 있다. 고집쟁이 농사꾼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북 봉화에 사셨던 전우익 선생님은 당신의 집 주변을 나에게 구경시켜 주시면서도 울진 소광리의 우리 금강송 자생지만은 사람들에게 안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하신 바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는가. 이곳 유곡리의 봉곡사 가는 길도 정말 나무를 아끼는 사람들만 찾아 왔으면 좋겠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희망사항일 뿐이다. 나도 최근 어느 일간지에 난 기사를 보고 찾아 갔으니.
유곡리 마을 끝에서 봉곡사 다리 앞까지 이르는 700m 정도의 소나무 숲길은 마냥 여유롭고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노송이 주는 이미지가 그렇듯 보기만 해도 기품이 넘치고 의연하다.
일요일 오후 휴가를 맞은 듯 한 가족이 오붓한 분위기 속에 소나무 숲의
산길을 오르고 있다.
소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에서 마치 원시림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일제시대 모자라는 전투기 연료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노송에서 송진을 채취했는데 여기의 나무들도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때의 상흔이 흉칙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도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수백년 된 소나무 껍질이 마치 거북이 등을 닮았다. 모두 장수하는 동식물이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 봉곡사 초입에 닿으면 만공선사의 불적을 기리는 탑이 이방인을 맞는다.
만공(滿空) 선사는 1895년에 이곳에서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한다.
그의 불적을 기리는 탑은 그의 법명과 연관이 있어서 인지 형태가 둥그렇다. 그가 오랫동안 주석했다는 예산 덕숭산 정혜사에서도 둥그런 형태의 만공선사의 탑을 본 일이 있다.
봉곡사 전경. 봉수산 자락 삼성각이 있는 곳에서만 유일하게 봉곡사 전경이 잡힌다.
봉곡사는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며 임란 때 소실된 후 몇 번의 중창을 거친 뒤 고종 7년(1889)에 최종 중수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곡사 요사채.
향각전
봉곡사 대웅전.
규모가 적은 대웅전은 퇴색한 단청 때문인지 오히려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대웅전이라 쓴 현액도 여느 사찰의 것처럼 당당하지 않고 마치 민화같은 냄새가 나서 친근감이 있다.
대웅전 뒷벽의 벽화.
요사채 건물 뒷편의 허물어지는 지붕. 시주하는 신도가 없어서 인지 오랜동안 방치되어 있는 듯 잡초가 무성하여 아무래도 볼상사납다.
요사채 앞에서 바라 본 삼성각.
벌써 가을을 얘기하는지 절 주변의 밤나무와 호도나무 열매에 살이 오르고 있다.
재배하던 컴프리의 씨가 퍼진 듯 절 주변 이곳 저곳에 자라 나 꽃을 피웠다.
절 마당 아랫쪽에 피어있던 영아자.
봉곡사는 참 아기 자기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절 밑으로는 연못을 조성해 놓았는데 하얀 백련이 꽃을 피웠고 수련도 꽃이 피었다.
절 마당에서 바라 본 풍광. 멀리 보이는 산이 광덕산(699m) 이다.
- 2006. 7.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