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9. 비로소 형체가 드러나다

소나무 01 2007. 5. 24. 21:11

 

 

 공사를 시작한 지 넉달 째인 12월이 되면서 집은 그럴듯한 외관을 갖추게 되었다. 계절이 이미 겨울로 접어들어서 인지 썰렁해 진 주변 모습과 함께 집도 어딘가 좀 썰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이게 내 집이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부자가 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미 적정선을 넘어 서 버린 공사비 지출로 인해 한편으로는 경제적 압박감이 들어지기도 했다. 때문에 뭔가를 더 꾸며 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도 더 이상의 욕심을 부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 

 

ㅅ자 형의 시멘트지붕 테두리에는 그냥 페인트만 칠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후배는 이왕이면 동판(銅板)으로 둘러 때깔을 좀 내어보자고 권했다. 그렇게 해야 기품이 나고 후에 매번 페인트 칠을 다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는 것이었다. 좋은 집은 다 그렇게 한단다.

 나로서는 개인 주택에 그런 처리를 한 경우를 봐 온 일이 없었기에(사실은 드문 드문 있었지만 내가 주의깊게 살펴보지 못한 탓이었다) 애초부터 생각이 없었는데 값이나 알아볼까 싶어 물었더니 3백만원 정도는 계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물어볼 것도 없이 곧바로 포기 결정을 내렸다. 모든 부분에서 그런 식으로 조금씩 욕심을 내다 보니 공사비가 자꾸 초과되는 것이었다. 그냥 수수하게 페인트칠로 마감한들 어떠하리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용을 전해 들은 아내는 예쁘고 튼튼한 집을 갖고싶다는 욕망때문인지 무리를 해서라도 구리로 테두리를 두르자고 한다. 오래 살 우리 집인데 할 때 잘하자는 것이었다. 그 말도 맞는 말이다.

 결국 모른 척하며 아내의 뜻에 따라 지붕 외곽선을 동판 테두리로 마감하게 되었다.(나중에 완성된 모습을 보니 그렇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은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화단 조성과 연못을 꾸미기 위해 구입해 놓은 돌더미들.

1층 거실과 2층 서재 앞 테라스 공간에는 방부목을 사용하여 데크를 꾸미기로하였고 1층 거실 앞으로는 예정에 없었던 화단을 꾸미기로 하고 주변에는 낮은 높이의 석축으로 테두리를 두르기로 하였다.  

 

 연못의 경우도 초과된 공사비 때문에 만들 것인가 포기해 버릴 것인가에 대해 많이 망서렸다. 그런데 집 주변에 시내를 이루는 작은 물줄기 하나 없고 보니 집 어디엔가 물이 있어야 될 것 같았고 또 정원에 연못이라도 있어야 전체적으로 집과 잘 어울리면서 한편으로 그 곳에 물고기나 수생식물을 기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추가되는 공사비가 문제였다. 대략 가로3m 세로5m 정도의 크기로 한다면 공사비를 최소화한다고 해도 대략 400만원 안팎이 소요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고민을 꽤나 했지만  이 역시도 결국 이번 기회에 만들지 않으면 앞으로 쉽게 할 수 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결국 무리가 되더라도 연못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연못을 만들어 놓으면 어쩌면 드므와 같은 수호적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어느 정도 마음이 가벼워 졌다. 

 

  울타리를 두르는 것도 돈이었다. 전원주택이고 하니 담장을 요란스럽게 꾸밀 필요가 없었지만 사철나무나 화살나무같은 종류의 생나무울타리로 하거나 요즘 많이 시공하고 있는 키낮은 철망 펜스에 넝쿨장미라도 심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형편으로는 이 역시 호사스러운 생각일 수 밖에 없었다.

 결국은 뒷산에 있는 향나무를 옮겨 심기로 했다. 뒷산에는 나에게 토지를 매각한 원래의 소유주가 심어 놓은 향나무 묘목 100 여 주가 있었다. 잘 됐다 싶었다. 엉성하지만 그 정도면 상징적 의미에서도 주변과의 경계가 될 수 있었다.  

    

 집 동쪽 편으로 쌓은 석축 일부. 돌의 크기나 높이로 봐서 붕괴될 염려는 없는 것 같았으나 큰 돌을 그냥 적당히 쌓아 놓은 것처럼 되어 버렸다. 이 역시 매우 엉성하게 보여 마음에 걸렸지만 한번 쌓았다가 허물어버리고 재시공 하는 바람에 여기에만 이미 천만원 가까이 경비가 소요되어 더 이상의 경비를 투입할 수는 없는 실정이 되어 버렸다.

 

  내부공사 중인 2층 서재. 남쪽의 창은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도록 방의 전면에 커다란 창호를 내도록 했고 내부에는 전체적으로 나무를 둘러 목조가옥 형태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목재는 향이 좋은 국내산 소나무를 사용하고 싶었으나 이 역시 비용이 만만치 않아 값이 저렴한데다 그런대로 괜찮은 향과 질감을 유지하고 있는 핀랜드산 소나무를 사용하기로 했다.

 

  불과 다섯평 정도밖에 안되는 구들을 놓은 황토방은 남쪽의 넓은 창호를 뺀 3면에 황토를 발랐다. 겨울에 황토를 바르다 보니 외부 습기때문에 쉽게 마르질 않아 난로까지 피워가며 건조를 시켜야 했다.

 아궁이에 나무를 지펴 불기운을 받은 방바닥은 쉽게 건조시킬 수 있었으나 벽체의 황토는 근 한달이 되도록 마르지 않았다. 황토라는 게 방안에 습기가 많으면 빨아들이고 반대로 건조하면 오랫동안 습기를 머금으며 습기 조절 능력을 발휘한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완성된 후 황토방에서 지내보니 시멘트와 벽돌로 처리한 안방이나 다른 방과 확실히 구분이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단 안온하다는 느낌인데 아마도 그것이 황토의 기운이 아닌가 싶고 또 비교적 구들이 잘 놓여져서인지 한번 불을 때면 방이 골고루 따뜻해서 좋았다. 방바닥에 황토를 두텁게 바른 탓인지 뜨끈 뜨끈한 기운이 하루나 이틀 이상 오래 지속되어서 좋았다. 

 

 황토방 할용 문제는 무엇보다도 땔감확보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이 공사하면서 내 집 산에서 벌채한 나무가 적지 않아 아직까지는 땔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요즘은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는 가옥이 거의 없고 보니 비교적 싼값에 화목을 구할 수 있어 앞으로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혹시라도 앞으로 나무 구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을까 싶어 방바닥에 온수 파이프를 별도로 깔아 놓아 황토방 난방문제는 나중에라도 큰 불편이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황토방은 참 잘 마련했다는 생각이다. 크기도 적당하고 장식도 필요없어 방안에서는 언제나 마음이 편하다. 누우면 방바닥이 뜨끈 뜨끈해서 특히 아내가 좋아한다.

 황토방에 불을 넣고 따뜻한 방바닥에 앉아 있거나 누워있으면 꼼짝도 하기 싫어 진다. 그럴 때 마다 시골생활에서 이런 정도의 작은 방 하나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때가 많고 결국 나머지는 그저 욕심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지는 것이었다.     

 황토방에도 바깥 조망을 위해 넓다란 창호를 설치했는데 앉아있다 보면 지금의 넓은 유리창 대신 한지를 바른 우리의 전통 창호였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창밖의 자연풍광 음미가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엌과 다용도실 바깥 출입문 쪽으로 만들어 놓은 장독대.

 적당한 크기의 옹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져 있는 장독대를 보면 어쩌면 그 것이 전원주택의 상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간장이나 고추장을 담궈야 하고 소금이나 젓갈류같은 것도 거기에 있어야 한다. 원래는 시각적인 면을 고려하여 주방 뒤안에 만들려고 했으나 아내가 강조하는 접근성의 문제로 인해 다용도실 출입문과 가까운 곳에 만들었다. 경계석을 두르고 약간의 자갈만 깔아 썰렁한 모습이다. 좀 더 모양새를 갖춰보고 싶고 노둣돌 같은 다른 시설들도 하고 싶었으나 자금 사정때문에 그저 나중에 하도록 하자고 미루었다. 

 그 앞으로는 채소나 꽃나무에 물을 줘야할 것 같아 수도전을 하나 냈으나 채소 등을 씻을 안정된 시설이 필요하다는 아내의 말에 따라 후에 시멘트로 별도의 시설을 하였다.   

 

 

  집 앞 정원에는 뒷산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포크레인으로 힘들게 옮겨 심었다.

 하지만 이 소나무는 관리부족으로 인해 3개월 여 만에 고사해 버렸다. 소나무는 상록수라는 특성상 뿌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더라도 나뭇잎의 푸른 기운이 오래 가는 모양이었다. 소나무의 그런 특성을 모른 채 영양제나 물 한번 제대로 주지 않고 방치했으니 살기를 바라는 게 무리였다. 그저 잔가지만 몇 개 쳐 주고는 녹색의 외관만을 보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으로 간과해 버렸으니 고사할 수 밖에. 방에서 내다 보면 창문 앞으로 소나무 한 그루가 듬직하게 서 있어서 볼 때마다 마음이 여유로웠는데 말라 죽고 말아 섭섭하기 그지 없었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안 사실은 고사목은 딱따구리가 제일 먼저 알아본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부터인가 딱따구리 한마리가 날아 와 소나무 기둥에 달라 붙어서는 따락 따라락 따라락- 하는 기관총 소리를 내며 껍질을 쪼아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뾰쪽한 입으로 두터운 껍질을 차근 차근 벗겨 내고는 그 안에 사는 작은 벌레들을 잡아먹는 모양이었다. 불과 며칠만에 소나무 기둥은 하얗게 속살을 들어내게 되었고 그런 다음 얼마 후에는 잎들이 누렇게 말라 들어갔다. 나는 그런 경우를 두어 차례 목격하면서 고사목과 딱따구리와의 상관 관계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집 뒷쪽 산에 있는 소나무들. 다시한번 앞마당으로 옮겨심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이식에 따른 경비 문제도 부담이지만 애착이 갈 정도의 특별한 수형을 가진 나무도 없어 포기해 버렸다.

 한편으로는 뒷산에 소나무 여러 그루 있으면 됐지 구태여 집 앞으로 옮길 필요 있겠느냐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승용차를 이용하지 않고 내 직장이 있는 여의도를 경유하는 인천공항-전주 간 공항버스를 타면 익산 IC까지 2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익산IC에 도착해서 내가 연락하면 후배는 공사 현장인 집에서 여기까지 10분 정도의 거리를 운전해 와 나를 픽업해 갔다. 대략 한 달에 한 두번 씩은 이 버스편으로 오가면서 건축 중인 집에 대한 생각 그리고 그 곳에서 생활해야 할 미래에 대한 것들로 상념에 잠기곤 했다.

 

 그러기까지 내가 고향에 집을 짓고 있다는 사실은 주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직장인으로서 회사 업무에 충실해야 할텐데 주택 건축 때문에 고향을 자주 오가는 모습이 부정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는 게 싫었다.  회사업무를 등한시 하며 제 집 짓는 일에 파묻혀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나 아닌지 그게 마음에 걸렸다. 또 주변에 알려지면 알려지는 대로 어떤 곳에 어떻게 짓고 있으며 왜 서울을 포기하고 그렇게 일찍 낙향하려느냐는 등등의 질문에 이러쿵 저러쿵 대응하는 게 싫어 그저 조용히 추진하고 있었다. 평소 내가 소원하던대로 산자락에서 자연과 함께 조용히 살 수 있게 되었다는 행복감에 젖어 그 자체만으로 만족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2006년 한 해가 거의 끝나가는 겨울, 지금 그 꿈이 서서히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이었다.

 

                                                                    

'내 집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 잠시 쉬면서  (0) 2007.05.24
10. 새집에서의 첫 밤  (0) 2007.05.24
8. 옷을 입기 시작하다  (0) 2007.05.24
7. 실내의 공간 배치  (0) 2007.05.24
6. 폭염 속의 공사 현장   (0) 2007.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