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10. 새집에서의 첫 밤

소나무 01 2007. 5. 24. 21:19

 

 

  지난 8.16일 부터 시작된 내집짓기 공사는 넉달을 넘겼는데도 마무리 되지 못하고 있었다. 전문 주택 시공업체의 경우는 통상 3개월 정도면 가능한 모양인데 내집 공사를 맡고있는 후배는 별도의 본업이 있는데다 필요할 경우 이곳 저곳 자문을 받아가며 시공을 하는 편이어서 시간이 더 걸렸다.

 나로서는 새 집에 대한 욕심때문에 어떻든 하루라도 빨리 공사가 끝났으면 좋겠다는 바램이었다. 공기가 길어질수록 인건비 등의 공사비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어 더욱 그랬고 실제로 고유가 여파를 타고 자재값 같은 것이 계속 상승하고 있었다.

 

 공사가 끝나는 대로 연말연시 휴가를 새집에서 보내고 싶었다. 다만 며칠이라도 내가 지은 새로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편안하게 기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 이었다. 그 때문에라도 막바지 공사를 서두르고 있었으나 하지만 생각처럼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다섯평 정도의 황토방 공사가 공사속도를 더디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날이 좋을때 좀 서둘렀으면 좋았겠으나 한겨울에 황토를 펴 바르다 보니 건조 속도가 매우 느려 거의 한달이 되어 가도록 마르질 않았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방안에 석유난로를 피워 놓는 등 적잖이 신경을 썼으나 바닥만 건조될 뿐 벽체의 건조 속도는 여전히 더디기만 했다.

 덥혀진 구들의 열기로 인해 황토 방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전통적인 방법대로 황토에 볏집이라도 잘라 넣었으면 좋았을 텐데 혼자서 이것 저것 챙겨야 하는 후배입장에서는 그게 그리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황토방을 제외하고는 각 방에 벽지바르기와 커튼 설치 작업 등을 서둘렀다. 아내와 함께 익산시내에 나가 재질과 디자인을 골랐다. 재질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는데 대체로 무난한 수준에서 선택을 했고 여기에만 대략 300 여 만원의 비용이 소요되었다. 실내 인테리어는 그야말로 돈과 직결되었다. 무엇이든 좀 더 품위있고 격조높은 것을 선택할라치면 하나같이 고가의 경비를 치뤄야만 했다. 주택의 건축비는 인테리어 비용이 좌우한다는 말이 피부로 와 닿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의 마무리 단계에서 건축비의 압박을 자주 받게 되는 형편이었다.

 거실의 난로를 비롯해서 갖춰 놓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건축자금 사정을 포함하여 여기에 내려 와 본격적으로 생활하기 이전까지는 사용빈도가 거의 없을 것이기에 내구성을 생각해서라도 기본적인 것 외에는 나중에 설치하는 게 좋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조금씩 서두른 덕분에 난방용과 온수 보일러  설치가 완료되어 어떻든 연말에는 새집에서 따뜻히게 잠 잘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소용된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천 여만원이 지출되었다.

 장작을 태워 뜨끈 뜨끈해진 황토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으나 아직 건조조차 되지 않은 탓에 나무로 벽과 천정을 두르고 강화마루를 한 2층 서재에서 기거해 보기로 했다. 안방과 거실 등의 1층의 더운 공기가 위로 올라 와 따뜻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서재의 경우는 마치 목조주택과 같은 아늑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좋았다. 수입산 소나무이라 할지라도 이 곳의 나무향 또한 그런대로 좋았다.

 

 이윽고 연말이 되자 이틀 정도 머무르겠다는 계산으로 새집으로 내려 왔다. 일단은 최소한의 취사도구와 이불만을 준비해 왔는데 취사 시설로는 전기를 사용하는 인덕션 시설을 갖추어 놓아 불편함이 없었고 화장실도 욕조와 샤워시설을 포함해 비데까지 갖추어 놓아 큰 불편함 없이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었다. 여기에 들어 간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으나 우리 부부의 노후 생활을 염두에 두다 보니 무엇보다도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드는 것이었다.  

 

 연말이 찾아 오면서 주변의 분위기는 들뜨고 어수선 했다. 많은 사람들은 해맞이를 위해 어디론가 떠나고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나섰지만 나는 갈 곳이 이미 정해져 있었던 셈이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찾아 온 고향의 새 집,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집 주변이 어지럽고 황량한 편이었지만 밤이 되자 모든 것들이 감춰져 버렸다.

 산자락의 밤은 더없이 고요하고 적막 했다. 때문에 주변에서 들리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귀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만 들려도 신경이 곤두섰다. 새로운 곳이라 아직은 마음이 불안정했고 단 한 채 있는 옆 집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행여 밖에서 인기척이라도 나면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너무 조용하다 보니 솔직히 무섭다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차량 소음을 비롯해서 온갖 소음이 그치지 않는 도시의 아파트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가 갑자기 정적이 감도는 곳에 떨어 져 있고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다만 나 혼자가 아니라 의지가 되는 가족과 함께여서 다행이었고 창 밖 저 멀리로 마을의 불빛이 듬성 듬성 눈에 들어 와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보일러로 달궈진 서재 바닥은 따뜻했다. 단열처리가 잘 된 편이고 보니 방안 전체적으로 훈훈하여 가벼운 옷차림만으로도 춥지않게 지낼 수가 있었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통채로 쏟아져 들어오는 밤풍경이 신비스러울만큼 아름다웠다.  창 밖 소나무 가지에 걸쳐있는 달이 황홀했고 나뭇가지 사이를 통해 비춰오는 교교한 달빛이마음을 사로 잡았다. 아내와 나는 새삼 감탄했다.

" 와- 정말 아름답다. 저 달 좀 봐. 좋다- "

" 집짓기를 정말 잘했네. 이렇게 좋은데... "

"와-   정말 좋다... "

 창밖의 밤하늘을 올려다 보노라니 아내와 내 입에서는 연방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래, 진즉 이렇 모습 대하며 살았어야 했는데.... 나는 그동안의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이런 산자락에 새로운 집을 마련한 것에 대해 크게 만족하였다.

 저 멀리로 보이는 가로등 불빛이 조금씩 커져 보이고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간간이 눈에 들어 와 무서웠던 분위기는 어느 새 사라져 버리고 잠시 시간이 멈춰버린 듯 그저 안온하다는 느낌 그것 뿐이었다.    

 

 그렇듯 황홀하도록 기분 좋은 밤이었다.

아침이 되자 아침은 아침대로 또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침 해가 바로 눈 앞에서 찬란하게 떠오르며 우리를 눈부시게 하는 것이었다.  

 2층 참문을 통해 밖을 쳐다 보니 저 멀리 진안 운장산 방향에서의 산줄기 능선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찬란하게 시작되는 아침이 나에게는 새로운 삶의 환희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 동안 생존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 오면서 한편으로 나는 이런 소중한 모습들을 잊고 지내야 했었다. 하여 이런 곳에 새 집을 마련하기 정말 잘했다며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에게 진정 새로운 삶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은 황홀한 느낌이었다.  

 

 

 

 아침 햇살이 방 안 가득히 들어 왔다. 아들 녀석은 눈부심을 피해 몸을 옆으로 돌아 누웠다. 피곤한 모양이었다. 10평 남짓한 서재는 모두 목재로 둘렀지만 그 안 쪽의 시멘트 독기와 접착제 등의 유해 기운이 일정 기간동안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아 차가운 날씨지만 창문을 약간 열어 놓고 자야 했다. 그래도 보일러의 온기가 방 안에 가득 차 있어 따듯하게 지낼 수 있었다.

  

 거실과 붙어 있는 주방은 아내의 희망대로 식탁을 조리대와 겸해서 쓸 수있는 시설을 갖췄고 주방 한 가운데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있는 아일랜드 스타일로 꾸며 보았다. 항상 벽 쪽을 향해 주방 일을 봐야하는 아내는 가족들에게 뒷모습만 보이는 게 싫었던 모양이었다. 사람 얼굴과 마주하면서 요리를 해 보자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씽크대 옆으로는 식기건조기가 부착되어있고 그 옆으로는 전기를 이용해 요리를 할 수 있는 4구짜리 인덕션 시스템, 그리고 그 윗쪽으로는 약간 품위있게 보여지는 원통형의 스텐레스 후드를 부착했다.

 서울의 한 주방기구 매장에 들러 이러한 시스템을 주문했는데 후드가격만 100 여 만 원이었다. 모두가 브랜드 값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싼 편 이었으나 그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걸 보니 가격은 차치하더라도 주부 입장에서는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참 욕심나는 주방시스템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애초에는 영업사원이 권하는 대로 1,500만원 정도의 시스템으로 주문했었지만 아무래도 무리한 것 같아 한 발 물러 서 설비 수준을 반절 정도로 다운시켜야 했다. 개수대를 포함한 조리 시설들이 벽쪽에 붙어있지 않고 주방 가운데 위치하여 아일랜드 시스템이라 불렀는데 식탁도 따로 두지 않고 흡사 스툴 바처럼 아내가 요리하는 것을 눈 앞으로 보면서 여기에서 음식을 먹거나 함께 식사하기도 했다.   

 

 결국은 2식구가 남아 살게 될 테니 주방은 단촐해도 되겠다 싶었는데 막상 시설을 하다보니 면적을 보다 넓게 설계하지 못해 약간 후회가 들었다. 무엇보다 아내의 희망사항을 그대로 수용하려고 보니 비좁게 느껴졌지만 아내가 그런대로 만족해 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맘을 달랠 수 있었다. 

 벽체에 붙인 수납공간 사이에 김치냉장고와 냉장고를 비치했고 오른 쪽으로 광파 오븐을 설치했다. 그러다 보니 수납공간과 씽크대와의 사이가 좁아 통행이 약간 불편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흡족했다. 이 곳에서 요리하는 게 즐겁다고 아내가 그랬으니 그만하면 된 것 아닌가.

  

 거실에서 본 안방과 화장실 쪽.

 

 

 거실에 붙어있는 화장실은 욕조를 없애고 샤워 공간으로 꾸몄다.

 샤워시설과 세면대 사이에는 유리판으로 칸막이를 하여 물튀김을 방지하도록 했는데 샤워기는 머리 위쪽과 전면에서 물이 분사되는 최신 기능이 추가된 샤워기를 구입하여 부착하였다.

 그러나 시각적인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평상시에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대부분은 샤워꼭지 하나로 충분했다. 모든 기계나 장비 같은 것이 그런 것 같았다. 기능이 많다고 해서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십, 수백가지의 기능이 포함되어 있는 내 휴대전화를 보더라도 기껏해야 목소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 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서울에서 이곳까지 왕복 400 여 Km를 운행하는 분신같은 승용차.

 눈 비를 피하기 위해 주자장이 필요했으나 초과해 버린 공사비 관계로 추후로 미룬 바람에 차는 밖에 적당히 세워놓아야 했다. 아직은 주차장 사용 빈도가 많지 않을텐데 지금 굳이 필요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더욱 그랬다. 

  

 안방은 아내의 요구에 따라 2중창을 하였다. 창과 창사이에 화분이라도 놓고 장식적인 효과를 기대하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안방이니 만큼 특별히 보온에도 신경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고려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창과 창 사이가 너무 좁게 처리되어 그 사이에 화분같은 것은 놓을 수가 없었고 그저 간단한 장식품 정도만 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건물의 모든 창은 일반적으로 시공하는 하이샷시나 알미늄샷시로 할 생각이었으나 집을 비워두는 날이 많아 안전성을 생각해야 한다는 문제,그리고 더운 여름 밤 잠자리에 들 때도 일정 부분 문을 열어 놓고 잠을 자야되는 방범상의 문제 등을 감안하여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최근 보급되고 있는 시스템 창호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런데 창호의 색상이 문제였다. 시스템 창호는 지역 대리점을 통해서도 설치가 가능했지만 내가 원하는 색상이 근처 익산이나 전주에서 구입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지역에는 창문 테두리가 모두 흰색과 짙은 밤색 두 종류만을 갖춰놓고 있어서 내가 원하는 나무무늬 색깔은 결국 서울 강남쪽에 있는 한 대리점과의 계약을 통해 설치해야만 했다. 시스템 창호값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든 여기에 들어 간 공사비만 1,500만원이었다.    

 

 안방에서 북쪽 모습을 조망하기 위해 낸 창문.

 좀 더 크게 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북쪽 벽면으로는 장식장을 놓아야 했고 또 안방에 창을 너무 많이 내는 것 같아 이곳에는 다만 바깥 동정만 살필 수 있는 크기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원래는 개폐식 창문으로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시스템 창호 성격상 이 정도의 작은 규모로는 개폐식이 불가하다는 설명에 따라 고정식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거실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이 곳은 모두 벽에 나무를 덧대어 목조주택 효과를 내 봤다. 나무 난간의 경우도 별도의 조형미를 내는 것을 피하고 최대한 단순하게 처리했다.  

 

 계단을 올라서서 2층 서재로 들어서기 직전의 공간.

 

 ㅅ자 형태로 지붕을 하다보니 2층 한 쪽에 10평 정도의 경사진 자투리 방이 생겼다. 굳이 필요가 없는 공간이기도 했으나 그래도 화실이라도 꾸며 이용하는 게 좋겠다 싶어 바닥에 나무를 깔고 그럴 듯한 방을 하나 더 만들었다.

 

 2층의 서재 천정 마감은 ㅅ자 형태의 지붕선을 그대로 살렸고 나무는 핀랜드산 소나무를 선택했다.

 욕심같아서야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적송으로 꾸며 그 좋은 솔향을 맡고 싶었지만 역시 비용절감 문제가 절실하여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외국산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전등도 단순한 것 보다 장식 효과가 있는 것을 택하다 보니 집안에 쓰일 전등기구를 구입하는데만 백만원이 훌쩍 넘었다.

 

                                               2층 서재에서 바라 본 기도실.

 이 역시 애초 설계도에는 없었으나 ㅅ자 지붕으로 짓다보니 자투리로 생겨난 예상치 않았던 공간이었다.  불과 다섯 평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신심깊은 아내가 차분하게 기도할 수 있는 방으로 꾸미기로 했다.

 

 계단 쪽에서 거실과 현관 문 방향을 바라 본 모습. 현관 출입문은 최근에 출시된 비교적 미려하고 견고한 것을 택해 달았고 안쪽으로 방풍을 위해 미서기 문을 별도로 설치했다. 나중에 다시 촬영해야 잘 보일 것 같다. 

 

 거실에서 동남쪽을 바라 본 모습.

 오른 쪽의 커다란 창문 외에 동쪽의 동정을 살필 수 있는 붙박이 창을 왼쪽 벽에 별도로 설치했다. 그 옆으로 벽체에 구멍을 뚫어 벽난로 설치에 대비했다. 거실에 벽난로를 굳이 설치할 것인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봤으나 일단은 설치비용으로만 최소 300만원 정도가 소요되어 이 역시 나중에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기거할 때 마련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집 동쪽으로 낸 아궁이. 

 직접 나무를 때어 항토방 온돌을 덥히기 위해 일부로 만들었다.

 온기가 가득한 황토방이 있다면 한 겨울에 얼마나 운치가 있을까 싶어 구들을 놓았지만 사실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들게 될 아내의 건강을 위해서 만든 의미가 더 크다.

 "뜨거운 곳에서 푸욱- 지지고 싶다"는 어머니와 아낙네들의 말을 평소에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사로 제거해 놓은 나무를 비롯해서 뒷산의 고사한 나무 등 땔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풍부했다.

단순히 난방용으로만 나무 땔감을 사용한다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솥을 걸고 밥을 할 입장도 못되었다. 솥을 걸 수 있도록 만들어 볼까도 생각했지만 쇠죽 끓여야 할 일도 없을텐데 언제 사용할 기회가 있겠나 싶어 포기했다.

 

 어떻든 집 어느 한 군데에서 불을 지필 수 있다는 것 그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다. 아들 녀석은 지금 빨갛게 타는 숯더미 위에 고구마를 얹어 놓았지만 이 장작불 하나 만으로도 내 어릴 때의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역 근처의 철도관사, 일제시대에 지어진 집이고 보니 다다미방을 제외하고는 방마다 구들이 놓여있어 난방을 위해 겨울이면 날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했다.

 밤새 구들이 식어 버리면 새벽에 다시 불을 넣어야 했고... 그래서 밤이나 감자 고구마같은 것을 일상적으로 그곳에서 구워먹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폐기된 침목을 이용한 장작 패기, 불 지피기, 화목으로서의 나무 식별과 선택, 화력조절 등과 같은 것에 대해서 나로서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가질 수 있었다.  

  

소로우는 월든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불 속에서는 늘 어느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저녁나절 불을 들여다 보는 노동자는 낮 동안의 노동에서 누적된 불순물이며 속된 냄새를 마음에서 씻어낼 수 있다"

  아궁이의 불 앞에 앉아 있으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하다. 불은 참 매력과 마력이 있다. 겨울 날 저녁마다 활활타오르는 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무척 행복한 것이었다. 

 

 집 뒷편에서 본 아궁이 쪽.

 집 코너 벽면에 설치되어있는 회색 박스는 전기 계량기함이다. 이 박스 안에는 일반 전기 사용량을 계량하는 것과 보일러용 심야전기 계량기 두 개가 설치되어 있다.

 심야전기는 밤 10시부터 이튿날 오전 10시까지 인입이 되나 값싼 이용료 때문에 설치하는 곳이 빠르게 늘어나고 보니 초기의  목적과는 다르게 요즘에는 사용료가 만만치 않아 서서히 부담이 되어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집 뒷편이 휑하다. 간단한 창고라도 벽에 붙여 만들어야 난방용 장비가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을텐테 아직 착수하지 못한 상태다. 그 때문에 수백만원을 홋가하는 보일러와 온수기가 방치된 듯 설치되어 있다.

 

 집 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부지 서쪽 편으로 산자락을 깍아 만든 진입로.

시작 부분에 경계를 표시한다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대문 기둥을 세웠다.

  

 대문에서 약간 내려 와 집을 내려다 본 모습.

 어느 등산객이 길을 따라 무심코 집안으로 들어 섰다가 새로 지은 집이 있자 구경이나 한답시고 이곳 저곳을 살펴보다가는 연못쪽으로 다가 가 관심을 보였다.

 

 공사비 때문에 연못 조성을 포기했다가 그래도 있어야겠다 싶어 건축비를 초과 집행하는 가운데 최소한의 비용으로 만들었다.

 배수구가 필요할 것 같아 연못 중간 정도의 높이에서 옆으로 물을 뺄 수 있도록 배관 설비를 했는데 자연배수 상태로 연못 물관리가 가능할 것 같았다. 평소에 밑바닥과 측면으로 일정량이 누수되면 그 만큼씩의 지하수를 새로 공급하면 될 것 이었다.

 그러나 막상 담수를 해보니 너무 많은 양의 물이 누수가 되는 바람에 나중에 다시 방수처리 공사를 해야만 했다.

 

   

   현관 문에서 연못 방향을 바라 본 모습.

 차 앞으로 보이는 반송은 관리를 잘못한 탓에 새순이 나올 무렵  고사해 버렸다.

 

                               아직 데크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의 집 정면.

 거실 앞 화단도 그렇거니와 온통 마사토인 앞 뜰에 듬성 듬성 심어놓은 잔디가 그저 썰렁하다는 느낌을 줄 따름이다.

 지금까지는 집을 지었지만 앞으로는 꾸미는 일이 남아 있어 또 얼마나 많은 시일과 공력 그리고 경비가 들어갈 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었다. 

 

 

                                                                         - 2006.12.30에 사진 촬영 등록

                                                                         - 2007. 8.16에 사진 설명 첨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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