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했던 이야기

꽃나무가 있는 풍경

소나무 01 2009. 12. 26. 20:53

            

 

 봄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대춘(待春)으로 설레는 사람들의 정서에 편승하여 며칠이라도 먼저 봄을 보여주고 싶어 과장된 표현을 할 때가 있었다. “-올봄에는 예년보다 일주일 일찍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식인데 그렇게 개화시기를 해마다 앞당겨 둘러댔다면 아마 지금쯤의 봄꽃은 대한 추위에 피었어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정말로 개화시기가 예년보다 열흘 정도나 앞당겨져 버렸다. 남녘의 매화와 산수유 화신은 진즉 들려왔었고 주초까지 잠시 차가왔지만 집 앞 가까운 산자락에도 봄이 와 있다. 가지마다 내려앉은 화사한 햇살에 생강나무가 맨 먼저 노오란 꽃봉오리를 피운 것이다. 진달래보다 일찍 피는 생강나무 꽃은 정선아리랑에 동백꽃 이름으로 등장하여 임 그리는 애틋한 사연을 취재했던 시절과 선친의 본향에 유난히도 많이 피었던 모습이 점철되어 유독 정이 쏠리지만 어떻든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는 나무들을 대하면서 나만의 감흥에 빠져 잠시 추억 속을 유영해 보기도 한다.

 

 지금 이대로의 꽃바람이라면 다음 주말 무렵에는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고향의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기가 좀 늦더라도 가로수 벚꽃 보다 아무렴은 산벚꽃 소식이 기다려진다. 전주 승암산과 모래재 주변 산자락에서 보았던 동화 같은 파스텔 톤의 환상적인 연분홍빛 아름다움과 온통 벚꽃으로 치장되어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가 되어버리는 완산칠봉 봄날 풍광의 장관이 눈에 선하다.

 

 어디 그 뿐인가. 벚꽃들의 향연이 끝나면 나무마다 새움이 빠르게 돋아나면서 나무들 저마다가 만들어 내는 신비스런 신록의 파노라마와 바래봉의 철쭉 등으로 이어지는 나무들의 축제 시리즈가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었다. 아카시아나 신갈나무처럼 번식력과 자생력이 강한 나무들 덕분에 그동안 우리 산이 빠르게 푸르러 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런 획일적인 산림녹화에서 탈피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검은 숲으로 불리며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독일의 유명한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는 인공으로 조성된 침엽수림이지만 사철 거무스름한 색깔을 하고 있어 사람들이 싫증을 느끼게 됐고 그래서 이제는 계절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 숲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도 단순한 식목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산의 다양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조림으로 옮겨가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을 암시한다.

 

식목 시기는 진즉 찾아왔고 나무시장도 곳곳에 열려 있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지자체 그 나름대로 시간과 기회를 만들어 이왕이면 꽃과 잎과 열매가 모두 좋은 나무를 심어 보자. 굳이 산이 아니더라도 좋을 것이다. 산에서만 봤던 노란 꽃과 붉은 열매의 보기 좋은 산수유와 이팝나무, 자귀나무 같은 것이 이미 가로수로 등장했듯 생강나무, 산딸나무, 산목련 같은 나무들이 도심에 심어진다면 사람들은 언제나 먼저 계절을 맞아들여 자연과 대화하며 공존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해진다 했다. 비록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더라도 꽃나무 한그루라도 심겠다는 마음을 지금 가진다면 빈들처럼 허허로워진 가슴에 생기가 돌고 꽃잎이 피어나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분명 삶이 풍요로워 질 것이다.

 

                                                                      (2007. 3.15. 전북일보)

 

'내가 했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그의 힘  (0) 2009.12.30
입신(入神)과 입신(入身)  (0) 2009.12.29
미륵에 터를 잡고  (0) 2009.12.26
끝없는 유정천리   (0) 2009.12.26
자연이 희망 아닌가  (0) 2009.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