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가을 날에...

소나무 01 2010. 10. 15. 23:39

 

나뭇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밤바람이 차다. 창문은 이미 빈틈없이 걸어 잠궜다. 약간의 냉기가 느껴 져 보일러를 켤까 하다가는 좀 더 참아 보기로 한다. 아직은 견딜만하다는 뜻이다.

 

근 한 달 넘게 힘들다 싶은 작업은 아예 쉬었다. 알레르기 비염 탓이다. 풀이 무성한 곳마다 예초기를 돌렸는데 그 틈에 꽃가루가 몸 안으로 침투한 모양이었다.

코가 막히고, 재채기가 나고, 눈물이 나고, 머리가 맑지 않은 채 쉽게 피곤하고... 신문 광고에 난 알레르기 비염 약의 증세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냥 아무 일도 하기 싫었다. 나이 때문일까? 

결국은 어느 새 면역력이 약해져 버린 몸둥아리 탓이겠지만 그러나 마음만은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 가 가을을 탄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앞마당 채마밭엔 배추와 무, 쪽파를 약간 심었는데 모두 잘 자라주고 있다.

고추는 끝물인데도 먹을만한 게 아직 많이 매달려 있다. 마늘도 약간 파종했지만 워낙 싹이 더디 나오는 것이라 마냥 기다려 보기로...

 

뒤안 자투리에는 들깨를 거두고 좀 늦었지만 시금치를 몇 군데 나눠 파종하다. 며칠 지나면 싹이 나오겠지.... 근데 가을 날의 전형이긴 하나 비가 너무 없다.

 

한랭사에 가둔 배추는 이제 벌레의 피해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어 배추값 폭등 속에 김장 걱정을 덜어 준다. 그 때 쯤이면 아마 배추값이 폭락할지도 모르겠다. 주변을 돌아 다니다 보면 모두들 배추를 많이 심었고 그리고 모두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이어서.

무는 초기에 워낙 벌레의 피해가 많아 올해 무 김장은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물을 자주 준 이유인지 아님 그런 마음의 주인을 생각해줘 인지 김장 걱정을 없애 줄 만큼 제법 많은 수효의 무가 쑥쑥 자라고 있어 흐뭇하다. 

 

집 옆의 자투리에도 파와 상추, 갓을 심다.

밭 한쪽에 자라는 골드메리를 뽑아 버리는 게 안쓰러워 내버려 뒀더니 한 포기에서 수많은 꽃을 피워 내 주인에게 보답한다. 그래 고맙다. 참 예쁘다.

골드메리의 향기가 해충의 접근을 막아준다고도 하는데 경험해 보니 그런 효과는 딱히 없는 것 같다.

 

울타리 주변에 여러 그루 심은 작살나무의 보라색 열매가 올해 처음 매달렸다. 지푸라기같은 가지를 심어 3년을 기다린 결과다. 봄의 꽃보다 그 모습이 아름다운 보석같은 열매다. 역시 참 보기 좋아 흐뭇하다. 

 

굵기가 큰 대봉감은 심은 지 6년 차여서 열매가 제법 많이 열렸었는데 많은 비의 장마 탓에 낙과가 많았다. 겨우 10개 정도가 매달려 가을의 그림을 만들어 주며 위안을 준다.

글쎄, 첫 해 열린 열매는 모두 따 줘야 한다 했는데 내가 괜히 욕심부린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을 달랜다.

 

찍다 보니 대추알 달랑 하나가 잡혀 쓸쓸하다. 제법 큰 나무를 구입 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마사토에 심었더니 결국 고사해 버렸고, 이후 지팡이 크기만한 것을 집 옆 다른 땅에 심었더니 1년 후 이런 대추알 10여 개가 달렸다. 

1년 후엔 주렁 주렁 열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두 그루가 잘 성장해 주고 있으므로.

 

마지막으로, 씨앗이 날아 와 제 스스로 꽃밭을 만든 화단의 구절초 앞에서. 내집 가을분위기의 하이라이트다.

누군가가 이 블로그를 볼 것이라 의식하는데다 흰머리에 주름살 깊어지는 나이 들어가는 모습 또한 그리 달가운 게 아니어서 나의 노골적(?)인 정면 샷은 그동안 피해 왔으나   이젠 인정할 것은 인정하기로 맘을 고쳐 먹다. 그게 나이 들었다는 징표인지.... 체념? 그건 아닌 것 같고, 그저 가능한대로 나의 위장된 껍데기를 벗어 보자는 것일게다.                                                                                                                             

 

오늘 밤은 느닷없이 철학자나 된 듯 너스레를 떨고 있다. 이것도 가을 때문인가. 가을이면 누구나 성숙해 진다 했으니...                                                                                                                                     

 

                                                                                   - 2010.10.15(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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