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이제야 안 '교룡'의 의미

소나무 01 2025. 1. 22. 18:07

새로운 해가 시작된 후 20여 일이 지났지만 그간 산행이 없었다. 할 일이 없는데도 할 일이 많은 것 같은 그런 나날로의 이어짐. 

불쑥 교룡산에 가고 싶었다. 가끔 그 옆을 지나치며 그 안이 궁금했는데도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집에서 1시간 정도면 되겠다 싶었는데 네비를 보니 1시간 27분 소요. 운무가 잔뜩 끼어 시야를 걱정했지만 도착할 때쯤 걷히리라 생각했다.

 

거의 도착할 무렵 가까이 교룡산이 보인다. 해발 518.8m. 가볍게 오르기에 적당한 산이다. 내가 태어난 곳이 이곳 남원이라서 좀 더 각별한 애정이 있는데도 그동안 광한루와 국악 행사 정도였을 뿐 더 가까워지지 않았다. 교룡산에 산성과 그 꼭대기에 방송 송신시설이 있는데... 다만 그런  정도의 인식. 

 

입구가 좀 을씨년스러워 보인다. 한겨울이라서 그런가?  사전 정보로 국민관광지라 알고 있었는데 주차장은 넓지 않았고 아무런 편의 시설도 없다. 초입의 오래된 표지판들과 그 밑에 버려진 철거물들로 좀 산만한 느낌. 인적이 전혀 없다. 비수기에 평일이라서 더욱 그러려니 여긴다.

 

돌로 쌓은 산성의 이 홍예문을 들어서면 산행이 시작된다. 3Km였다는 산성은 백제 때 축조되었다는데 이후 여러 차례 허물어지고 다시 쌓고를 거듭하다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이 동문(東門) 주변 약간의 흔적만이 유일하다. 그 과정 속에 신라와의 전투, 임란 때 왜적과의 격전, 의병활동 등의 상흔과 근대 동학 주둔지로서의 기능 등을 안고 있다. 

 

선국사 대웅전 앞 보제루의 대들보가 자연상태 재목 그대로여서 마음을 끈다.

 

두 채의 민가를 지나 200여 m를 오르면 선국사(善國寺). 국(國) 자 이름이 들어간 사찰이 그러하듯 통일신라 때 지어진 이후 국란이 있을 때마다 군량미 보관이나 은신처 등으로 역할을 했다고.

11시가 가까웠고 비교적 포근한 기운이 도는 날씨인데도 경내엔 풍경소리조차 들리 지 않는 고요.

 

선국사 뒷길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저 멀리로 남원시가지가 들어올 법도한데 짙은 운무가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그런데 사실은 운무가 아니라 밀도 높은 미세먼지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어제 알았다면 산행을 미뤘을 것 같은데 하루가 지나서 내려진 미세먼지 주의보 때문에 늦게 알게 되다. 심호흡을 해야 했으니 미세먼지 속의 산행이 좋을 리 없었겠지만 그냥 운무였던 것으로 맘먹다.

 

제일 관심 있던 곳은 이 은적암 터였다. 정상까지의 중간 정도 위치에 있었는데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가 1861년 이곳에서 다섯 달 정도 은거하며 동학의 철학과 실천방안을 담은 동경대전(東經大全) 등을 저술한 장소.

서학에 대응하여 경천사상을 바탕으로 사람이 주인이 되는 사회개혁을 내세웠다. 그가 어리석은 이를 구제한다는 의미의 '제우(濟愚)'라는 것으로 자신의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조선 말기의 혼란스럽고 부패한 세상을 바꿔보려 했지만 41살 때 순교하며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1894 갑오동학농민운동으로 점화되면서 전봉준과 함께 대표적 지도자로 활동하던 김개남은 이곳 교룡산성에 주둔하기도 하면서 남원을 비롯한 각지에서 수만의 농민군을 이끌고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그 꿈은 끝내 좌절되었고.

원래의 암자 이름은 덕밀암(德密庵)이었는데 그가 은거하면서 '은적'으로 바꿨단다. 하지만 그 후 30여 년이 지난 1894년 일본에 의해 소실되어 버렸고, 지금은 풀만 무성할 뿐 훗날 '천도교'로 이어받은 교단에서 세운 표지만 하나 다만 허허롭다.  

오늘처럼 햇볕 좋은 날 수운(水雲)이 저 마당 바위에 앉아 새로운 세상을 그리고 있었을 텐데...

 

교룡산 최고봉은 밀덕봉. 거쳐 온 덕밀암의 이름을 바꿔 붙였을까. 정상은 방송사 송신시설에 내어주고 그 옆으로 초라하게 표지판 하나 서 있다. 워낙 터가 좁은 데다 사방이 나무들로 막혀 주변 조망이 어렵다. 거기에다 짙은 미세먼지까지. 남원시가지는 물론 저 멀리로 지리산 줄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건만.

 

교룡산 초입의 동학혁명 기념비

 

그래도 채워진 게 있다. 교룡산(蛟龍山) 교룡의 의미가 교룡처럼 생긴 지형에서 비롯되었겠다 싶다. 하지만 그보다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큰 꿈을 그렸지만 때를 못 만나 이루지 못했던 난세의 큰 인물을 '교룡'이라 지칭한다는 사실.

교룡산은 아직도 그런 이들의  큰 꿈을 품고 있는 듯했다. 

(PS: 왕복 2시간 여 산을 오가며 머물렀지만 도시 인접한 이곳에서 단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교룡이 잠룡이어서 그런가 보다며 조용히 돌아서다)

                                         

                                                                                           - 2025. 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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