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에 꽃무릇이 개화한 지 사흘이 지났다. 어느 날 꽃대가 쑤욱 올라 와 봉오리를 맺는가 싶더니 곧바로 꽃잎이 열렸다. 가히 순간적이다.
빨간색 자태가 화려한 데다 잎 없이 꽃만 피어 올라 마치 꺾꽂이를 해 놓은 듯하다.


내 집 화단에 핀 꽃무릇.
어느 해 봄날 야생에서 넓은 잎의 난(蘭)처럼 보이는 게 예사롭지 않아 두어 뿌리 캐어 옮겼더니 가을마다 이처럼 붉은 꽃이 단아하게 피었다.
이름이 꽃럼 예뻤다. 무릇을 닮았는데 꽃이 좋아 꽃무릇이라 했다고. 무릇이 무슨 뜻일까. 학창 시절 달달 외웠던 기미독립선언문에 '아 생존권의 박상됨이 무릇 기하이며..." 하는 그 무릇? 그건 아닐 테고.
사전을 찾아보니 백합과의 식물이름이라고 나온다. 뿌리가 넓게 퍼진다는 의미가 무릇이라고 말한 이도 있던데 보다 확실한 어원은 알 수가 없었다.

잎이 봄에 나와 시들고 나면 흔적도 없는데 가을 초입에 갑자기 치솟듯 올라 와 사연이 궁금한 꽃이다. 잎 따로 꽃 따로 여서 서로 만나지 못해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상사화와도 닮았는데 상사화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란 꽃말을 지닌 반면 이 꽃무릇은 '슬픈 추억'이고 죽음, 이별, 환생 같은 꽃말도 지니고 있어서 그 때문에 주로 사찰 주변에 많이 심어 진다고.

원광대학교 자연식물원에 지천으로 피어 난 꽃무릇


고창 선운사에 가면 융단처럼 펼쳐진 꽃무릇을 장관을 볼 수 있을 텐데 가까운 대학 식물원을 찾아보는 것으로만 만족하기로. 농과 계통의 학과가 있지만 지역의 한 대학에서 제법 큰 규모의 식물원을 만들어 일반에 공개하고 있는 게 참 좋아 보였다. 내가 가끔씩 들러 나무들과 대화하는 장소다.
꽃무릇은 탐방로 곳곳에 그리고 한쪽에 조성된 장미 정원에도 많이 피어 있었다. 여기는 마치 동서양의 조화 같다는 느낌.

꽃무릇은 개화 기간이 유난히 짧아 아쉽다. 불과 며칠 후면 시들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에 좀 더 남아 있을 것 같다. 올핸 몇 뿌리 캐어 언덕의 부모님 산소에 옮겨 심을 생각 때문이다. 평소 꽃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편이고 또 꽃과 꽃말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편도 아니지만 이 꽃무릇만큼은 예외가 되었다.
이름도 예쁘고 꽃도 예쁘고,
그리고 '환생'이라는 단어 한 마디가 마음을 움직였기에.
- 2025. 9.25(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