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목에 담겨진 사연.
올해도 어김없이 꽃을 피워 주었다. 어느 새 17년 째 내 집에서 함께 사는 행운목은 지난 1996년 부터 해마다 꽃을 피어 냈다. 10년이 넘도록 해마다 꽃을 피운 것이다. 그러나 행운목을 위해 내가 해 준 일이라곤 단순히 물을 주거나 겨울에 동사하지 않도록 보온관리에 신경 쓴 것 뿐이다. 그런데도 행운목은 해마다 꽃을 피워 집안 가득 향기를 선물했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전해 듣기로는 행운목은 백년만에 꽃이 핀다하고 그리고 꽃이 피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그것은 그만큼 꽃을 보기가 쉽지 않다는 뜻으로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 낸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어떻든 꽃이 필 것 같지 않은 형태의 나무에서 꽃이 피었다는 그 자체가 경이롭고 즐겁다. 꽃이 핀 덕분에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는 지난 10여년 동안 보이지 않는 가운데 크고 작은 행운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2006. 5.20(토). 베란다에 내 놓아 눈길이 자주 가지 못하였는데 어느 날 쳐다 보니 꽃 봉오리가 불쑥 올라온 것이었다. "와- 올해도 꽃이 피네- "하며 짧은 감탄사.
5.23(화). 옥수수 열매같던 꽃봉오리의 껍질이 벗겨지면서 흡사 브로콜리같은 하얀 꽃봉오리가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5.28(일). 일주일 쯤을 지나자 여러 개의 꽃 봉오리를 매달은 꽃대가 쑥쑥 뻗어 나기 시작했다.
6.4(일). 다시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마치 성냥개비를 꽂아 놓은 듯한 꽃봉오리가 금새 꽃을 피울 것처럼 통통하게 부풀어 올랐다. 한편으로 약간의 향내를 발산시키면서.
위의 확대한 사진.
6.5(월). 드디어 부분적으로 하얀 꽃을 피워 냈다.
같은 날. 창 가 책상에 앉아 있던 아내가 행운목에 꽃이 핀 모습을 보며 너무 기쁜 나머지 퇴근 무렵의 나에게 문자 매세지를 보내 왔다. 아내는 이런 류의 감정 표현을 좋아하지 않고 둔감한 척 하는 편인데도 얼마나 기뻤으면 나에게 알려 주고 싶었을까.
나는 꽃이 피었다는 사실보다도 아내의 이런 뜻하지 않은 돌출 애정행위(?)에 매우 기뻐했지만 행운을 바란다는 아내의 기원에도 불구하고 못된 남편은 그 날 일찍 귀가하지 못하고 자정이 넘도록 술독에 빠져서는 몹쓸 술향기에만 취해 있었다.
6.6(화). 꽃봉오리 마다 하얀 꽃들이 많이 피어 났다. 행운목 꽃은 저녁 무렵에 개화했다가 다음 날 아침이면 시들어 버리는 짧은 생명력을 갖고있지만 그 때문인지 백합 향기와 같은 강한 향기를 내 뿜는다.
향기는 진하다 못해 독할 정도로 강력해서 방문을 닫고 지내야 할 정도이며 퇴근해서 집에 들어 오면 아파트 문을 열자 마자 향기가 진동한다.
이 날 저녁 네 식구가 함께 저녁을 먹는자리에서 가장으로서의 한마디,
"행운목 꽃이 피었다고 해서 그냥 행운이 오겠거니 하며 얄팍한 마음 갖지말고, 뭔가 행운으로 연결될 만한 일들을 찾아 해 보기로 하자!"
위의 확대한 사진. 비록 도시의 아파트이긴 하나 달빛을 통해 이 꽃을 보면 여인네 속살 이상으로 새 하얗게 보이는 기쁨이 있다.
행운목은 영어로 Lucky tree. 학명은 Dracaena(드라세나)가 된다.
행운목은 내가 지난 1991년 5월, 직장 관계로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을 때 친구 두 녀석이 선물로 가져 다 준 것이었다. 지금은 미국에서 목사 생활을 하고 있는 w군과 국내 항공사의 중역으로 있는 o 군이 택시에다 싣고 와 끙끙 대며 옮기던 기억이 새롭다.
그래서 나는 그 후 두 번 이사를 하게 되었지만 이시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소중하게 옮겼고 지금은 한 식구처럼 지내게 되었다.
딱 한번 아내가 분갈이 해 준 일이 있으나 그저 물만 주고 키워 온 셈이다. 그래서 꽃을 피워 낸 행운목이 고맙고 더욱 소중하다.
꽃을 피우느라 기력을 다하다 보니 잎들이 건강하지 못하고 누렇게 말라 죽어 갔다. 식물은 살아 가기가 힘들 때 종족 보존을 위한 본능으로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어쩌면 내 집 행운목은 주인을 잘 못 만나 이렇게 해마다 고생(?)하는 지도 모르겠다. 참 미안하고 미안하다. 조만간 영양제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베란다 끝 하얀 창고 문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에 응한(?) 내 집 행운목.
- 2000.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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