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서울을 떠나다

소나무 01 2026. 6. 28. 16:39

서울에서 35년을 살았다.

남원에서 태어 나서 여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보성에서 잠깐, 그리고 군 제대까지 익산에서 15년을, 이후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광주에서 12년을 보냈다. 

 

무엇이나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으로 왕성하게 젊은 시절을 보낸 게 광주에서의 직장 생활은 아들 딸이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삶을 더 넓은 곳에서 펼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상경을 결심하게 된다. 인생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점점 커가는 두 자녀의 시야를 고려해야 했다. 

     광주에 살면서 두 자녀를 얻었다. 집 근처의 저수지 등의 자연환경에서의 1980년 대 어린 시절.

 

 

치열한 경쟁을 버텨내야 할 것 같은 서울 생활이 두렵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이겨내겠다고 다짐했고 그런 결정으로 지난 1991년부터 나를 인정해 준 사람들의 배려로 본격적인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나라의 중심지로 옮긴 직장생활은 무난했다. 검약과 저축을 병행하며 집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재에 밝지 못한 내 성향으로 인해 관악산을 마주한 신림동에 거주하며 30년을 넘게 직장이 있는 여의도를 오갔다. 자녀들은 서울에서 모두 대학까지 마쳤고 한 녀석은 유학의 기회도 가졌으니 되었다 싶다.

서울에서의 그 긴 세월 동안 가슴 안으로만 삭여야만 했던 굴곡들이 그 이면에 왜 없었을까만 여건에 순응하며 비교적 순탄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서울 집 앞 개천에서 물놀이 즐기는 손주와 그 친구들.

 

그렇듯 가장 길게 살았던 서울이 고향처럼 되었으니 계속 그 안에 정착하며 사는 게 맞을 것 같은데 그러나 마음 안으로는 늘 고향이 따로 있었다. 그곳은 도시가 아니라 시골이어야 했고.

정년 후 서울 근교에서 살아보겠다는 생각이 없진 않았으나 내가 줄곧 추구해 오던 삶의 형태는 땅과 나무가 있는 자연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 그리하여 또 다른 발령지였던 전주에서의 마지막 직장 생활을 정리하며 인근의 지금 이곳, 익산의 미륵산 자락에 터를 잡게 되었고 나의 여정을 끝낼 때까지 이곳에서 떠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여기 익산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줄곧 학창생활을 이어 온 데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고 계셨던 곳이어서 실질적인 고향이다. 가끔 푸른 바다의 여수가 눈에 밟히면서도.

 

한 대학 캠퍼스에서 제작 실습을 지도하는 중에.

 

 

30년 이상의 세월을 한 직장에서만 일했던 세월, 60이 채 못되어 지난 2010년에 마감한 뒤에도 다행히 고향 언저리에서 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어서 그간 봐 두었던 터에 새 집을 짓고 시골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8년 여를 시골의 새로운 직장에서 일했다.  

우리의 여러 전통문화 파급을 위해 일하던 직장에서의 한 체험 현장에서. 

 

그러나 인생 후반기로 흐르는 세월을 어찌하겠는가. 나이가 더해 갈수록 많은 측면에서 한계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의식주 문제를 혼자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 점차 단조로움으로 다가왔고 직장 문제의 경우는 스스로의 능력이 뛰어나거나 또는 호방하거나 단호한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주변 형편을 살펴보는 경우가 잦아졌다. 지금의 자리에 내가 마땅한 인물이 아닌데도 과거의 경륜이나 나이 때문에 불편한 배려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질 때가 많아졌고 또 나보다는 더 젊은 사람들이 앉아 일하는 게 조직 내부와 사회에 필요하리라 여겨졌다. 작지 않은 조직에서의 내 위치는 자영업의 사람들 경우와는 달랐다. 변화가 필요했다.

 

결국 모든 일자리에서 손을 놓았다. 나를 포함한 오늘날 노인들의 신체적 조건이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것은 사실이나 '고령'이란 이름으로 찾아드는 여러 삐걱 거림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많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했다.

은퇴한 주변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그들이 전원생활을 희망하면서도 서울에서의 문화생활에 익숙해진 아내들의 반대로 시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다행히(?) 내 아내는 남편 뜻에 쉽게 동의해 주어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시골 산자락에서의 생활을 이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서울에 친구가 많고 문화 복지 종교 등 모든 게 잘 갖춰진 서울 생활을 마감해야 하는 아내가 맘에 많이 걸렸지만 좀 더 노력하면 시골에서의 노후를 더 여유롭게 그리고 아름답게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오래 살아왔던 서울의 한 아파트 내 집 거실에서 본 어느 날의 관악산 풍광.

 

내가 한 자리에서 오래 살았던 단지여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을 만큼의 노후된 아파트인 데다 마을버스를 타고 비탈길을 올라야 하는 입지 여건 때문에 매도가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전망이 좋다는 장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떻든 어렵지 않게 새 주인을 만나 넘겨줄 수 있었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관악산, 단지를 나서면 바로 이어지는 산길과 천변의 산책길, 사람 사는 세상 같은 재래시장...  

무엇보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날 수 있고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의 석별이 가장 아쉬웠지만 오늘날의 SNS 세상에 살고 있으니 때때로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살고있는 시골집에서 바라본 진안 운장산 방향의 산 능선과 아침 운해.

 

그렇게 서울을 떠난 것이 지난 6월 11일이었다.

                         

                                                               - 2026. 6.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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