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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잇꽃을 심으며

내 집 뜨락 회양목의 아주 작은 꽃과 홍매가 피기 시작하면 왱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겨우내 몸을 숨기고 있던 벌들이 어느새 나타나 이제 봄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는 거다. 향기 그윽한 서향과 치자의 늘 푸른 잎이 동사했을 정도로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이었기에 봄꽃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했는데 울안에서 가장 먼저 피었던 풍년화는 벌써 시들었고 복수초는 거의 꽃잎이 져버렸다. 지금은 영춘화와 수선화, 산수유 같은 봄꽃들이 차례로 개화하면서 그야말로 화란춘성(花欄春城)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한 좋은 계절이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진달래와 목련, 개나리, 명자 꽃이 곧 만개할 것이고 히어리, 수수꽃다리, 해당화, 말발도리, 노랑꽃창포 등등이 연달아 꽃을 피우며 함께 사는 주인을 기쁘게 해 줄 것이다. 세상사..

기타 2021.03.15

설중치(雪中梔)

梔(치)는 치자나무를 뜻한다. 치자나무는 상록수다. 눈 속에서도 초록의 기품이 자못 의연한데 초록 그 안의 빨간 열매 또한 은근한 아름다움을 보여 준다. 여느 해 같으면 늦가을에 열매가 모두 익었을 텐데 지난 해에는 개화 시기도 늦었고 따라서 열매도 한 겨울이 되어서야 빨갛게 모양을 갖추었다. 지난봄에 찾아든 추위 때문이었을까. 심은 지 10년도 훨씬 지났지만 척박한 사질토에서도 그런대로 잘 자라주어 주인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해마다 열매를 거두어 잘 간수했다가 우리 식구에게는 물론 지인들이 찾아오면 즐겨 치자밥을 지어 내놓았는데 노란 색깔이 참 보기 좋았다. 아직은 지난해의 치자가 남아있어 마당에 좀 더 두고 눈으로 감상하는 호사를 누려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까치의 공격이 시작되었..

내 집 이야기 2021.01.11

눈 오신 날 손주와...

크리스마스 선물로 축구화를 사 보내라던 손주 녀석은 그에 대한 답방(?)인 양 제 엄마와 함께 시골 할아버지 집을 찾아왔다. 답례 용품은 견과류 같은 것으로 제 엄마가 대신했지만 녀석 얼굴 한 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할아버지는 행복한 연말이었다. 찾아온다는 전화에 눈 소식이 있는데 위험하니 내려오지 말라 하려다 이내 마음을 바꿨다. 눈이 오면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어 보는 그런 시골 추억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녀석이 내려 온 다음 날 예보대로 눈이 제법 내렸다. 지난겨울에 눈이 거의 없었으니 참 오랜만에 내린 눈이었다. 내 나이 즈음에는 눈을 치워 길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거리를 하나 얻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새하얀 세상을 대하면서 거기에서 이는 마음의 정화를 생각하는 반가움이..

내 집 이야기 2021.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