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293

눈 오신 날 손주와...

크리스마스 선물로 축구화를 사 보내라던 손주 녀석은 그에 대한 답방(?)인 양 제 엄마와 함께 시골 할아버지 집을 찾아왔다. 답례 용품은 견과류 같은 것으로 제 엄마가 대신했지만 녀석 얼굴 한 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할아버지는 행복한 연말이었다. 찾아온다는 전화에 눈 소식이 있는데 위험하니 내려오지 말라 하려다 이내 마음을 바꿨다. 눈이 오면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어 보는 그런 시골 추억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녀석이 내려 온 다음 날 예보대로 눈이 제법 내렸다. 지난겨울에 눈이 거의 없었으니 참 오랜만에 내린 눈이었다. 내 나이 즈음에는 눈을 치워 길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거리를 하나 얻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새하얀 세상을 대하면서 거기에서 이는 마음의 정화를 생각하는 반가움이..

내 집 이야기 2021.01.11

땔감 만들기

황토방 하나 있어 군불 때는 재미가 있다. 아내가 오면 한 여름에도 불을 땠다. 나이도 있고 하니 옛 어른들 말씀처럼 뜨거운 방에서 몸을 좀 "지지라"고 그러는 것이었고, 아내는 좋아했다. 아궁이가 있어 불을 지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얻는다. 어쩌다 한 번 씩 불을 넣고 보니 땔감 소요가 많은 것은 아니다. 나무들이 많이 자라 울타리 안에서 가지치기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이번 겨울엔 아내가 황토방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 나무의 소비가 제법 많은 편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밖에서 구해 올 필요가 없을 만큼 여유가 있지만 이게 타고 나면 한 줌 재로 변하는 것이고 보니 평소 많이 준비되어 있어야 안심이다. 완전히 소모가 될 때까지 마냥 축낼 일이 아니라 앞으로의 내 노동력 한계를 생각해서라..

내 집 이야기 2021.01.10

낙엽을 치우며

떨어진 잎을 그냥 쳐다보며 이 가을을 보내고 싶지만 누가 보면 참 게으른 사람이 사는 집으로 단정지을까 봐 사실 그게 부담스러워 낙엽을 치우다.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 했으니 행여 지저분하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낙엽을 볼 때마다 오 헨리보다는 피천득의 낙엽이 많이 생각이 나서 올해도 쓸어 모아 태울까 싶었지만 제법 너른 마당을 갖고 살면서도 이젠 그럴만한 공간이 없어 웅덩이에 버리기로 하다. 또 하나, 솟아 오르는 연기를 보고 소방관서에서 득달같이 달려올 것 같은 우려감도 없지 않거니와 언젠가처럼 자칫 실수하여 산불을 낼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없지 않아서다. 마당에 떨어진 낙엽들을 부지런히 긁어 모으다. 갈쿠리라는 용어를 듣는 것 만으로도 옛생각이 아련한데 직접 손에 들고 일함이 정겹고 즐겁..

내 집 이야기 2020.11.17

목화에 반하다

목회하면 우선 문익점이 바로 생각나는 것은 주입식 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영향이 아닐까. 다음으로는 어릴 적 한 겨울에 덮고 자던 그 두툼하고 무거웠던 솜이불, 그리고는 영화를 통해 봤던 광활한 대지에서 흑인 노예들의 목화따는 모습, 또 cotton fields 같은 노래가 전부인 것 같다. 재배하기가 쉽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수익성이 떨어져서 인지 알 수 없으나 주변에서 목화를 재배하는 모습은 아주 드물게 봐 왔을 뿐이다. 어떻든 작은 식물에서 구름같은 솜뭉치가 피어 나는 게 신기해서 텃밭에 몇 개 심어 봤는데 시일이 지날 때 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줘 감탄할 때가 있다. 순백의 하얀 꽃이 참으로 순수하게 보여 한참을 들여다 볼 때가 있는데 이게 사나흘 지나면 은근한 연분홍으로 바뀌어 또다른 감흥을 자..

내 집 이야기 2020.10.13

무화과 이야기

무화과가 겨울 추위에 약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심은 지 오래되었지만 잘 자라다가 매서운 겨울 추위를 만날 때면 뿌리만 남기고 동사해 버리기를 몇 번. 2년 전에 다시 모두 동사한 후 지난해 새 가지를 몇 개 새로 뻗더니만 한 겨울을 무사히 넘기고 올해 잘 성장하고 있다. 말하자면 가지는 2년생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는 15년생쯤 되는 셈이다. 올봄에 열매가 여나무 개 열리더니만 영양 부족 현상이듯 몇 개가 사라져 버려 그저 그러려니 했었는데 여름이 되면서 제법 많은 열매가 다시 열렸다. 그런데 무화과는 어느 순간 갑자기 몸집을 키워 푸르던 열매가 노르스름하게 변하면서 먹음직스럽게 그 모습이 변하게 된다. 무화과 아래쪽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속살을 드러내면 다 익었으니 따 먹어도 된다는 신호..

내 집 이야기 2020.07.20

생명의 경이로움 2

오래 전 산행 중에 노오란 망태버섯을 만나 기뻐한 적이 있는데 엊그제 나를 위해 멀리서 찾아 온 친구와 근처 대밭을 산책하다가 다시 만나다. "와, 이것 봐라"하는 친구의 기뻐하는 외침을 듣다. 가리키는 곳을 살펴 보니 망태버섯이다. 참 아름답고 진귀한 모습인데 이번에는 하얀색의 망태 차림이다. "우와 - " 흰망태버섯은 처음이었다. 이런 버섯들은 대개 하루가 생명일 것이다. 그런데도 온몸으로 이름다움을 선사하는 그 희생이 한없이 경이롭다. 더구나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그늘에 살면서 말이다. 굳이 벌과 나비 없이도 포자로 번식이 가능하니 번식을 위해 유혹하거나 누구에겐가 보여주려고 이렇듯 화려하게 치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은퇴 후 강화의 한 산자락에 터를 잡아 자연과 벗하며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내 집 이야기 2020.07.07

생명의 경이로움

마당을 오가다가 짙은 주황색의 예쁜 생명체를 보게 되다. 창고 앞의 그늘진 땅 이끼에 드러 나 있어 혹 이끼에 피는 꽃인가 싶었다. 참 신기(신비)하다 싶으면서도 이제 노안이 된 내 눈으로는그 작은 실체를 확인할 수 없어 접사렌즈를 들이대다. 그런데 놀랍게도 버섯이 아닌가. 십 여년 넘게 이곳 시골 집에 살았지만 이렇듯 극히 작은 버섯은 처음 대하다. 엊그제 비가 왔었는데 비 온 후의 습한 기운 때문에 그늘 쪽에서 피어 난 모양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생명체지만 참 경이롭다는 생각이 먼저다. 포자는 어디에서 날아 왔을까. 며칠동안 좀 더 오래 지켜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오늘 하루면 수명이 다할 것이다. 햇빛도 없는 그늘, 아무도 봐 주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내 보였다가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존재. 그..

내 집 이야기 2020.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