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이야기 293

둘레길 산책

원래 집터를 구하면서 배산임수를 생각했었지만 집 뒤편으로 난 산자락 오솔길을 따라 소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평소에도 자주 산책에 나서는 편이지만 요즘 같은 겨울철에는 거의 매일같이 둘레길을 걷는다. 대략 왕복 3-4Km 정도의 거리가 된다. 집 뒤로 난 나만의(?) 오솔길을 4백 미터 정도 걸으면 본격 미륵산 둘레길 입구에 이른다. 좌로는 미륵사지가 있는 곳이고 우로는 뜬바위와 구룡마을 대나무 숲 또는 사자암으로 갈 수 있는 길, 대개는 미륵사지 방향으로 몸을 꺾는다. 가면서 시원한 지하수를 마실 수 있고 가까이에서 미륵사지 석탑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둘레길은 대개 소나무와 참나무 또는 아까시와 단풍나무일 뿐이어서 수종이 매우 단조롭지만 호젓해서 좋다. 한 두한두 ..

내 집 이야기 2023.01.07

란타나 추억

뜰 안에 사계절 두루 꽃을 바라볼 수 있는 화초들을 심었다. 그러나 겨울에는 아무래도 흐름이 멈춰진다. 그럴까 봐 꽃을 대신하여 빨간 열매를 꽃처럼 볼 수 있는 몇 종류의 나무들을 심어 가꿨다. 하지만 대부분은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기도 전에 새들의 먹잇감이 되어 거의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니 실망스럽다. 대신하여 실내에 들여놓은 화분 대 여섯 개에서 꽃을 대할 수 있음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부겐빌레아, 그다음이 이 란타나(Lantana)다. 볼 때마다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 주기 때문이다. 법정스님의 난(蘭)처럼 나도 실내에서 화초 기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 "추억"이라는 것 때문에 몇 개 정도는 예외로 하고 있다. 왕성했던(?) 현역 시절 국제회의 출장으로 멀리 ..

내 집 이야기 2023.01.05

산란계의 마지막 알

마지막은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는데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얼마 전 산란계 사육을 끝내고는 또다시 기르고 싶다는 욕심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그동안 기르던 산란계들이 더 이상은 알을 낳지 않아 정리했다. 먹이를 들고 가면 우르르 쫓아 나와 반기곤 했는데 이제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좀 허탈하다. 정확히 지난해 5월 12일 레그혼으로 여겨지는 병아리 20마리를 들여와 키우기 시작했는데 3개월 반쯤 지나고부터 알을 낳기 시작하면서 양계의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대개는 한 겨울에 알을 낳지 않는다고 하던데 내가 기르던 닭들은 하루에 한 개, 또는 이틀에 한 개씩 꾸준히 낳아 줘 나와 식구들의 건강을 챙겨주었고 여유가 있어 더러는 이웃, 지인들과도 나눠 먹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달걀을 만들어..

내 집 이야기 2022.12.02

감과 밤

내가 살 터를 구입하면서 맨 먼저 심은 나무가 감나무였다. 어느새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주에 있는 한 종묘장에서 대봉감 5주를 구입해 심었는데 그 무렵 살구, 사과, 배, 자두, 호두, 밤 등 여러 과실나무 묘목을 함께 심었지만 가장 성장이 좋은 것은 감과 밤이었다. 사질토의 척박한 땅 때문이다. 다른 과수들은 성장이 매우 더디고 열매가 거의 없어 봄철 꽃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감과 밤은 굳이 거름을 하지 않아도 가을이면 제법 실한 열매가 맺혔다. 집 언덕에 토지의 여유가 좀 있어 밤나무 10 여 그루를 심었는데 지금은 대 여섯 그루에서 밤송이가 많이 달린다. 그대로 수확하면 상당한 양이될 텐데 그 '상당한'의 상당량이 벌레가 먹어 절반 정도만 거두어 먹는 정도. 게으르기도 하려니와 ..

내 집 이야기 2022.11.05

도토리 줍기

울 안에 오래된 토토리 나무가 몇 그루 있다. 해갈이 하는지 지난해엔 도토리가 거의 열리지 않았는데 올핸 땅바닥에 지천으로 떨어진다.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할 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해가 거듭되면서 그냥 방치하는 게 아깝다 싶었다. 텃밭을 가꾸며 먹거리를 만들어 먹는 즐거움이 있지만 거기엔 반드시 상응한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채소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도록 꾸준히 보살피면서 적당한 노동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도토리의 경우는 순전히 공짜다. 울 안에 이런 나무가 있다니,,, 주울 때마다 나무에 고마워한다. 다만 주어서 그냥 먹을 수 없고 껍질을 까고, 분쇄하고 그리고 수없이 쳐대서 물과 함께 가라앉혔다가 다시 끓여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그러나 그 자체가 별미..

내 집 이야기 2022.10.19

호박꽃 단상

흔한 꽃이 호박꽃이요 꽃 자체의 펑퍼짐한 자태로 인해 호박꽃도 꽃이냐고 비아냥 거린다. 특히 특정 여성을 겨냥하여 그리 호칭함은 일종의 모욕적인 발언으로 들린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평소 호박꽃을 대하는 나의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호박을 얻기 위해 심어 가꾼다는 생각뿐 호박꽃에 별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 며칠 비 내리고 날이 더워 줄곧 집 안에 머물면서는 다시 쳐다 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올라갈 땐 안 보이던 꽃이 내려올 땐 보이더라는 시구와 같이. 아침 일찍 창밖을 보니 호박꽃이 샛노랗게 피어 눈에 빨려 들어온다. 하루에도 수 십개 피는 것 같은데 나팔꽃 그것처럼 아침 일찍 피었다가 오전 중에 시들어 버리니 평소 내 시선을 끌지 못했던 것일까? 오늘 아침은 한참을..

내 집 이야기 2022.08.02

웬 영지버섯?

영지버섯은 육안으로 보아도 효과가 좋을 것 같은 모습이다. 영험스러움이 있기에 영묘하다는 靈자를 붙였을 것이다. 평소 TV에서만 봐 왔던 터라 내 집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줄 알았다. 비가 내린 뒤끝이면 마당에 여러 종류의 버섯이 피어 나 여기 블로그에 담아 놓은 일이 있다. 그런데 영지가 보일 줄이야. 집 언덕을 오르내리느라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보통 4, 5년 정도면 부패하는지라 교체하는 작업이 귀찮아서 최근까지도 시멘트 블록으로 대체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무 그대로가 더 운치가 있을 것 같았기에. 그런데 지난봄 어느 날 계단을 오르다 발밑을 보니 노란 버섯대가 올라 와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틀림없는 영지버섯이다. 세상에. 그 후로도 버섯은 눈에 보이지 않게 꾸준히 ..

내 집 이야기 2022.08.01

아이쿠, 물이 안 나오네...

시골(전원) 생활이 언제나 즐겁거나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TV 프로그램에서의 자연에서의 생활 모습을 보면 대부분 긍정적인 것을 다루고 있지만 비슷한 분위기에서의 즐겨 보는 내 입장에서는 불편해하는 상황도 담아주면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그런 걸 어떻게 극복하는지 나에겐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햇수로 17년 째 접어든 산자락에서의 생활, 평소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하며 그저 느슨하게 지내다가 겨울에 보일러가 말썽을 부리거나 지하수가 펌핑되지 않아 물을 쓸 수 없게 될 때 저으기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TV나 인터넷 같은 류의 고장이라면 이라면 며칠 동안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물은 어찌 할 수가 없지 않은가. 필수 생활용 수다. 서비스를 의뢰하면 시간이 꽤 ..

내 집 이야기 2022.07.30

아니, 이게 무슨 꽃?

제초 작업을 하다가 자목련 나무 아래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 본 순간 절로 터져나오는 말이 "아니 무슨 꽃이 여기에...". 처음엔 금전초려니 했는데 보라색깔이 유난히 짙고 꽃이 여러 개 무더기로 피었다. 잎과 꽃들이 납작 엎드린 채 땅에 붙어있었다. 이곳 내 집에서 살아오며 처음 보는 꽃이었고 물론 그동안 산과 들에서도 본 일이 없었다. 이럴 때 편리한 게 사진으로 찍어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다음의 꽃 검색 기능이다. 이것은 "금창초일 확률이 99%"라고 나온다. 금창초(金瘡草)라는 여러 해 살이 들꽃이다. 항균과 지혈 작용 등에 효과가 있다는 약초. 그러나 그런 약성보다는 꽃과 잎의 형태가 특이해서 관심을 끈다. 잎은 마치 크리스마스 때의 장식용 나뭇잎처럼 생겼다. 주변을 살펴보니 더 이..

내 집 이야기 2022.04.23

수탉을 생각한다 2

어찌어찌하여 기르고 있던 수탉 중 2마리만 남겨 놓고 모두 처분했다고 지난 글에 그랬다. 그래서 그 후로 좀 홀가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또 다른 문제가 생겨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레그혼 계의 대장 닭 때문. 녀석이 나름 보스 역할을 하며 암탉들을 보호하는 것은 좋으나 제 주인까지 경계하거나 공격하는 것에 인내하기 쉽지 않았다. 이 녀석은 대장 닭답게 몸집이 크면서 벼슬과 육수, 부리 등이 예사롭지 않아 위엄을 느끼게 한다. 내가 사료를 주거나 둥지에 알을 꺼내려고 닭장 안으로 들어서면 딴청을 부리는 듯하면서도 주인인 나에게도 매서운 시선을 보내며 경계하는 것이었다. 암탉들에게 무슨 해꼬쟁이라도 할까 봐서다. 녀석이 어떻게 하나 보자며 옆에 있는 암탉을 살짝 건드리면 꾹꾹 꾹- 하는 위..

내 집 이야기 2022.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