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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신 날 손주와...

크리스마스 선물로 축구화를 사 보내라던 손주 녀석은 그에 대한 답방(?)인 양 제 엄마와 함께 시골 할아버지 집을 찾아왔다. 답례 용품은 견과류 같은 것으로 제 엄마가 대신했지만 녀석 얼굴 한 번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할아버지는 행복한 연말이었다. 찾아온다는 전화에 눈 소식이 있는데 위험하니 내려오지 말라 하려다 이내 마음을 바꿨다. 눈이 오면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어 보는 그런 시골 추억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싶어서다. 녀석이 내려 온 다음 날 예보대로 눈이 제법 내렸다. 지난겨울에 눈이 거의 없었으니 참 오랜만에 내린 눈이었다. 내 나이 즈음에는 눈을 치워 길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걱정거리를 하나 얻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새하얀 세상을 대하면서 거기에서 이는 마음의 정화를 생각하는 반가움이..

내 집 이야기 2021.01.11

땔감 만들기

황토방 하나 있어 군불 때는 재미가 있다. 아내가 오면 한 여름에도 불을 땠다. 나이도 있고 하니 옛 어른들 말씀처럼 뜨거운 방에서 몸을 좀 "지지라"고 그러는 것이었고, 아내는 좋아했다. 아궁이가 있어 불을 지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얻는다. 어쩌다 한 번 씩 불을 넣고 보니 땔감 소요가 많은 것은 아니다. 나무들이 많이 자라 울타리 안에서 가지치기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이번 겨울엔 아내가 황토방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 나무의 소비가 제법 많은 편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밖에서 구해 올 필요가 없을 만큼 여유가 있지만 이게 타고 나면 한 줌 재로 변하는 것이고 보니 평소 많이 준비되어 있어야 안심이다. 완전히 소모가 될 때까지 마냥 축낼 일이 아니라 앞으로의 내 노동력 한계를 생각해서라..

내 집 이야기 2021.01.10

낙엽을 치우며

떨어진 잎을 그냥 쳐다보며 이 가을을 보내고 싶지만 누가 보면 참 게으른 사람이 사는 집으로 단정지을까 봐 사실 그게 부담스러워 낙엽을 치우다.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 했으니 행여 지저분하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낙엽을 볼 때마다 오 헨리보다는 피천득의 낙엽이 많이 생각이 나서 올해도 쓸어 모아 태울까 싶었지만 제법 너른 마당을 갖고 살면서도 이젠 그럴만한 공간이 없어 웅덩이에 버리기로 하다. 또 하나, 솟아 오르는 연기를 보고 소방관서에서 득달같이 달려올 것 같은 우려감도 없지 않거니와 언젠가처럼 자칫 실수하여 산불을 낼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없지 않아서다. 마당에 떨어진 낙엽들을 부지런히 긁어 모으다. 갈쿠리라는 용어를 듣는 것 만으로도 옛생각이 아련한데 직접 손에 들고 일함이 정겹고 즐겁..

내 집 이야기 2020.11.17

친구와의 가을동행

떨어져 살아도 마음은 늘 가까이 닿아있는 친구. 그래도 우리 1년에 몇 번은 서로 얼굴 봐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지난 봄 이후 다시 만난 깨복쟁이 친구. 언제든 기별없이 만나도 좋을 친구 둘과 지난 주말 함께하다. 멀리 강화에서 4시간 넘게 달려 먼저 도착한 벗과 진안 메터세쿼이아 길을 찾아. 문득 친구가 그리워질 때 언제든 만나 속깊은 얘기를 거리낌없이 나눌 수 있음이 진정 행복이지 않겠는가. 막역한 친구와는 한 잔의 술로 부족하다 했다는 고사를 사전 문자로 띄워 보낸 친구의 주도로 우린 새벽이 오도록 긴 시간 기쁘고 즐겁게 회포를 풀다. 모두가 자유인(?)이 되는 내년부터는 보다 의미있는 동행길에 나서 보자며. - 2020.11.14(일)

기타 2020.11.16

고구마 캐다

조금씩 농사 노하우가 쌓여 간다. 사전에 고구마순을 사 뒀다가 비가 온 다음 날 흙에 물기가 충분했을 때 심었다. 마사토 수준의 워낙 건조한 땅이고 보니 그렇지 않으면 고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는 유난히 길었던 장마로 인해 땅이 오랜 시일동안 적당한 물기를 담고 있어서 잘 성장할 수 있었다. 해서 다른 작물은 몰라도 고구마 만큼은 제법 튼실한 구근을 만들어 주었다. 비록 손바닥 만큼의 재배 면적이라 할지라도 수확의 기쁨을 가족과 나누고 싶었다. 아내와 아들의 일정에 맞춰 고구마를 캐다. 지난 해 보다는 확실히 많은 소출이 있어서 수확의 기쁨이 있었다. 그물망 때문에 그동안 멧돼지로 부터의 피해는 없었으나 고라니가 낮은 그물망을 뛰어 넘어 어린 순을 잘라 먹는 바람에 약간의 피해가 있었을 뿐 이었다. ..

텃밭 농사 2020.10.20

다시 찾은 화암사

벌써 거의 20 여 년 정도의 세월이 지난 것 같다. 전라북도 안에 있는 주요 산들을 찾아 혼자 조용히 산행해 보기로 마음먹고는 실행에 옮겼을 때 였으니까. 주변 숲이 정겨운 호젓한 산길을 따라 초입 주차장에서 천천히 20 여 분 오르면 외부와 완전 단절된 것 같은 곳에 절집이 숨겨져 있었다. 절의 규모가 크면 참 고색창연하다는 감탄이 나올 수 있겠는데 그보다는 '퇴락 '이라는 말이 합당할 것 같은, 이를테면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온 어느 뼈대있는 집안의 종가처럼 여겨져 그 때문에 친근감이 있었다. 우람한 일주문이나 사천왕대신 우화루와 요사채 사이로 붙여 만든 아주 평범한 출입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대면한 화엄사의 첫 인상은 그랬다. 20 여 년이 지났지만 그 때의 느낌이 거의 그대로여서 반가..

여행 2020.10.20

목화에 반하다

목회하면 우선 문익점이 바로 생각나는 것은 주입식 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영향이 아닐까. 다음으로는 어릴 적 한 겨울에 덮고 자던 그 두툼하고 무거웠던 솜이불, 그리고는 영화를 통해 봤던 광활한 대지에서 흑인 노예들의 목화따는 모습, 또 cotton fields 같은 노래가 전부인 것 같다. 재배하기가 쉽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수익성이 떨어져서 인지 알 수 없으나 주변에서 목화를 재배하는 모습은 아주 드물게 봐 왔을 뿐이다. 어떻든 작은 식물에서 구름같은 솜뭉치가 피어 나는 게 신기해서 텃밭에 몇 개 심어 봤는데 시일이 지날 때 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줘 감탄할 때가 있다. 순백의 하얀 꽃이 참으로 순수하게 보여 한참을 들여다 볼 때가 있는데 이게 사나흘 지나면 은근한 연분홍으로 바뀌어 또다른 감흥을 자..

내 집 이야기 2020.10.13

우리 씨앗

토종 씨앗이 많이 사라졌다고 하는데 우선 재배하기 쉽고 수확량이 많은 개량 수입종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종묘상에 가면 언제나 손쉽게 씨앗을 구입할 수 있고 보니 농사를 마무리 하면서 구태여 따로 채종해서 보관해 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비록 텃밭 농사지만 나도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이른 봄, 내가 사는 지역의 여성농민회에서 토종 씨앗을 무료로 나눠준다기에 구경 겸 들러 보다. 그들이 생산한 다양한 종류의 농산물을 전시도 하고 판매도 했는데 한 쪽에서 명함 반쪽 크기의 비닐봉지에 여러 씨앗을 담아 나눠주고 있었다. 노랑참깨, 고추, 상추 등 여러 씨앗들이 하나 하나 예쁘게 담겨있었는데 그 중 몇 개 골라 심은 게 오이와 상추, 쥐이빨 옥수수, 목회였다. 오이는 다섯 개 정도가..

카테고리 없음 2020.08.28

나의 예도 세월에게 물어 보오

(익신문화관광재단 발행 "예인열전"에 수록) 운명의 동자승이 되다 미륵산 아리랑고개 너머로 겨울 찬바람이 불던 어느 날 익산시 금마면 산북리 산자락의 한 종가(宗家). 사람도 살림살이도 없이 마치 폐가처럼 방치된 집에서 홀로 산고를 치르던 여인은 마침 인근을 지나던 탁발승에 의해 가까스로 혼절을 면할 수 있었다. 신음소리와 아이울음에 놀란 스님은 황급히 부엌으로 달려 가 물을 덥히고 탁발했던 쌀로 미음을 만들어 정성으로 산모와 아이를 보살폈다. 온기라고는 엄마의 체온뿐이던 차가운 방에서 태어 난 아이는 다행히도 건강했다. 1935년 음력 정월의 일이다. 아이의 아버지는 전주 이(李)씨 회안군파 21대 종손이었지만 그동안 낳았던 일곱 자식 거의를 영양실조와 질병 등으로 유아시기에 잃어야 했던 충격으로 실의..